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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수박에는 껍질이 없다

아빠와 함께 대전으로 내려오는 길

by 구문도

엄마는 또 바리바리 싸고 있었다. 가방 맨 아래에 껍질을 도려낸 채 네모네모로 차곡차곡 쌓은 수박통, 블루베리 세 통, 스타벅스에서 새로 산 예쁜 텀블러, 둥그런 페이스트리 빵, 참외 두 개. 나는 본가에 갔다가 집에 올 준비를 할 시점에 꽤 분투하며 저항한다. “그만 주란 말이야.” 잔소리하지 않으면 가방에 오이소박이와 구이용 고기가 더 담겼을 뻔했다. 나는 혼자 살기에 다 못 먹는다. 고기를 받아서 썩힌 적도 있다. 그래서 만류한다. “참외 내 집에도 있어!” 그러면 엄마가 키득거리면서 말했다. “너 집에 가면 운전한 아빠 줘야지.” 생각해 보니 합당해서 참외 두 개는 받았다. 물론 내 집에 와 보니 아빠는 과일을 전혀 안 먹었지만.


나는 소위 호구에 가까운 면이 있어서 차를 혼자 보러 가면 안 되었다. 그래서 아빠랑 같이 본가 주변에서 구매했는데, 그러다 보니 차가 본가 근처로 와 버렸다. 차량 탁송비는 매우 비싸다고 했다. 그러니 아빠가 몰고 집에 오게 된 것이다. ‘네가 몰면 되는 게 아니냐?’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운전을 두려워합니다. 출장 갈 때는 어쩔 수 없이 고속도로를 타기는 하는데, 운전하는 동안 나는 신경이 매우 곤두선다. 왜냐면 도로는 통제 불가능한 공간이라고 느껴서다. 나는 고속도로를 탈 때마다 추돌사고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이건 컨트롤이 안 된다. 하여튼 그래서, 아빠가 굳이 운전대를 잡고 두 시간 반의 거리를 운전해야만 했던 것이다.


나도 양심이 있다. 내 나이도 이제 서른을 넘었고, 아빠 나이도 예순을 넘었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 사람을 혹사하는 건 옳지 못하다. 그래서 사실 평소에 대전에 부모님이 놀러 오실 땐 KTX를 이용하도록 하는데…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으니까. 나는 대전으로 내려오는 길에 조수석에 타서 자지 않으려고 했다. 운전자 혼자 깨워두는 건 위험하다. 우리는 오면서 새 차 특성이 어떤지 이야기했다. 아빠는 주변에 차가 없는 구간에서는 일부러 차선을 살짝 넘어본다던지 하면서 차의 안전 기능을 체크했다. 아빠는 여전히 이 차를 조금은 마뜩잖아하고 또 나름 괜찮다고도 생각한다. ‘너무 시끄러운 거 빼고는 괜찮긴 하네’ 이 정도면 찬사다. 되었다. 아빠 차는 세단이다. 내 차는 소형 SUV인데 어떻게 아빠 세단보다 조용할 수 있으랴.


밤 9시가 넘어 집에 와서 아빠를 우선 쉬게 하고 편의점에서 내일 올라가는 길에 먹을 육포와 물, 그리고 믹스커피를 사 왔다. 우리 부모님 참 특이하다. 믹스커피를 안 마시면 잠이 안 깬단다. 아니! 요즘 같은 세상에 지구 세 바퀴를 둘러야 살이 빠진다는 (속설이다) 프림이 들어간 커피를 누가 마셔! 하지만 두 분은 어림도 없다. 그냥 마신다.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다. 내 집에는 평소 프림 커피가 없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소량으로 산다. 내일 아침에는 아빠는 내가 기존에 타던 차를 몰고 다시 올라가야 한다. 걱정이다. 나는 내 차가 안전장치가 없는 오래된 차라서 고속도로에서 몰기 무섭다고 새 차를 뽑은 건데, 나는 그 차에 아빠를 태우고 보낸다. 나는 내 이기심에 놀라면서도 편의를 위해서 아빠를 그 차에 태워서 올려 보낼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받아주는 부모의 마음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내가 하는 건 졸음껌과 육포, 물을 사 오는 것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라면을 끓였다. 우리 아빠는 마른 사람인데 라면을 좋아한다. 밥으로 아침 식사를 차리면 국물과 밥만 먹는 사람인 데도 라면은 그릇을 다 비운다. 좀 쉬다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차량 두 개 사이에 짐을 옮겼다. 올라갈 차에서 짐을 싹 뺐다. 차에 담긴 건 이제 올라가는 길에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뿐이었다. 새 차에 스마트폰 번호 표시판을 붙이고, 차 문으로 다른 차를 찍지 않도록 스티로폼을 붙였다. 마지막으로 차를 직접 주차하는 걸 검사받았다. 어라운드뷰가 있어도 이렇게 큰 차를 주차해 보는 건 처음이라 긴장이 되었다. ‘기둥 주변에서 코너링할 때 이전 차와 같이 생각하고 하면 안 된다’ 주의사항을 듣는 걸 마지막으로 아빠를 이전 차에 태우고 올려 보냈다. 헤어지고 잠시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깨달았다. 아, 일부러 종이컵도 샀는데 육포를 종이컵에 놓지 않고 보냈다. 운전자가 어떻게 고속도로에서 육포 봉지를 뜯는 단 말인가.


두 시간 후에 아빠가 집 주변까지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때 산책을 다녀와 점심을 먹고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엄마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아빠 출발했어?” 출발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이제 자동차에 놓을 기념품을 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전에 해외출장 갔다가 성당에서 사 온 묵주가 있어서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주는 대로 받기로 했다. 내가 이전에 직장 동료에게 애기 옷을 사주고 기뻐했듯이, 주는 것에서 오는 기쁨도 있는 것이다. 내가 가끔 부모의 죽음을 상상하고 겁에 질리는 것은 괜한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는 상실을 두려워하고, 분이 넘치게 받았고,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꿈에는 성공한 내가 부모를 책임지는 모습이 있는데, 그게 어떻게 이뤄질지, 이뤄지기는 할 지 궁금하다. 나는 그저 상상하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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