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00점보다 97점이 아름다운 이유

완벽을 망치는 방식에 대하여

by 구문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옷 브랜드가 있다. 이 브랜드의 옷은 괴상하다. 러플이 왜 있어야할지 모를 곳에 붙어있다던지, 기능을 하지 못하는 카라가 있다던지. 디테일이 과해서 그 완성도가 100점을 넘어버린다. 그런데, 이 넘은 점수가 103점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97점으로 이끈다. 과해서 망치는 것이다. 이것은 ‘오버스럽다’의 정의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97점을 사랑한다. 이런 물건들을 보자마자 알아챌 수 있다. 이것은 나와 통한다. 이것이 가진 균열은 의도적인 것이다.


마치 나선과 같은 것이다… 둥그렇게 호를 그리던 나선은 어떤 흠을 만나서 반사적으로 바깥쪽으로 튀어나간다. 튀어나간 나선은 다시 호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다시 흠을 만나, 또 바깥쪽으로 튀어나간다. 이것은 끝없는 팽창이다. 만약 호를 그리던 나선이 흠을 만나 바깥을 향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완벽한 원을 그리고 끝맺었을 것이다. 97점은 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실망이자, 현실의 벽이고, 시작이고, 기대가 자라는 곳이다. 그것이 100점과 97점의 차이다.


나는 100점 보다 97점에 가까웠다. 나는 완성되지 못했고 그렇기에 틈을 가졌다. 어렸을 땐 이 틈을 참으로 괴로워했다. 틈을 가지고 있었기에 차선을 선택한 경험이 많다. 이 차선은 나를 나선으로 안내했다. 입시도, 전공도, 직장도… 처음에는 내 인생이 패배의 기록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알 수 있다. 이것은 내 인생의 궤적의 특징이다. 나는 효율적으로 다가가는 법을 모른다. 항상 둘러간다. 마치 여행과 같다. 축적된 나선은 나를 예상치 못한 제 3의 지점으로 안내한다. 97점의 누적은 때로 100점 보다 더 흥미롭다. 그 궤적은 예측 불가능한 함수를 따른다.


나는 이제 97점을 기대한다. 100점을 기대하지 않는다. 내 인생의 흠은 예상치 못한 도달점에 나를 데려다 놓을 것이다. 돌아가는 순간에 목적지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아 눈물 흘릴 때도 있지만, 그 다음 순간에는 웃을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어쩌면 내 인생이 끝나는 지점에서 조차 나는 목적지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나선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그것이 내 인생의 궤적이고, 그것이 나의 방식이다. 내 무의식이 인도하는 방향이다. 그 끝에는 정답이 아닌 가능성의 구름이 있다. 내 인생의 불확정성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GPT에게는 때로 뿅망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