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에게
어릴 적 시간은 한없이 느리게 가더니 지금 내 시간은 쏜살같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던 그때는 이 사실을 몰랐다. 어느덧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 어릴 적 되고 싶었던 그때의 나를 이미 지나 봄바람이 불고 장미가 피는 정원에서 잡초를 뽑고 있다. 어린 시절의 궁금증은 해소됐다. 무슨 일을 하고 어디에서 누구와 살며 또 어떤 꿈을 꾸는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작은 텃밭에서 잡초를 뽑고 무성히 자란 상추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 하나가 생겼다. “지금의 모습이 네가 꿈꾸던 너인 거니?” 더딘 시간을 견디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던 그때는 시간을 극복하고 싶은 욕망 외에 무엇이 있었는지 왜 많은 것을 지금은 잊었는지 그때의 나를 소환해서 따지고 싶은 지경이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순간순간의 희망들은 지금의 나처럼 절실했을까? 습기 먹은 시원한 바람이 귓불을 스치고 나는 차분해졌다. 정원 한편에 마련한 파고라 안에서 비 내리는 풍경을 보며, 비를 피하는 생명들의 지혜를 바라보며, 넋을 놓았다.
기다리던 장미가 피고 모내기를 끝낸 건너편 논엔 지하수를 퍼 올려 물을 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필요한 것들을 위한 일머리 들이다. 생각 없이 산 것이 아니라 나의 특성에 맞게 그때마다 맞는 일머리들을 소화해 내며 그렇게 채우고 또 채워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바람은 또 파고라에 걸쳐놓은 발을 흔들며 머릿결을 스쳤다. 이번에도 시원했다. 잠깐만에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은 되고 싶은 내일이 있니?”라는 질문이다. 나는 너무도 명확하게 그 답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한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의 공허함은 여기서 오는 것이었다. 생각이 멈추자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눈에 거슬리는 잡초를 힘 있게 뿌리째 뽑아 담장 밖으로 버렸다. 개운했다.
한 발씩 내딛을 때마다 시간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도도한 그의 규칙적이고 감정이 실리지 않은 정교한 흐름에 두려움이 생겼다. 이제는 이 냉혈한을 이겨낼 방법을 찾자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땀이 흘렀다. 시간을 녹여낸 땀이!
대답 없는 어린 나에게 다시는 질문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일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물었을 때의 답을 준비하기로 했다. 또 바람이 분다. 장미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