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대 너머에 진짜가 있다
결혼식 축가 중에 유난히 마음을 울리는 곡이 있다. 정인의 ‘오르막길’이다. 신랑이 신부 앞에서 이 곡을 직접 부르기라도 하면, 나는 뭉클해진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어느새 눈물을 닦고 있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라는 가사로 노래는 시작된다. 축가치고 너무 우울한 거 아니냐고 속삭이던 친구도 있었다. 그러게 정말로 이 곡이 지나치게 우울한 거라면 좋겠다. 하지만 이 노래는 지극히 평범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몹시 현실적이다.
연애할 때와 달리 부부로서 공유하는 삶은 항상 핑크빛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우리 앞에 꽃길이 펼쳐져 있어. 평생 널 행복하게 해줄게.’ 라는 말보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이 가파른 비탈길일지도 몰라. 비록 수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같이 걸어가 보자’라며 청혼하는 쪽에 좀 더 신뢰가 간다.
언젠가 티비 프로에서 가수 유희열씨가 ‘내가 행복해지려고 당신을 만나는 게 아니라, 불행해도 당신이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아내의 말에 결혼을 결심했다던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그 말에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현실에서 듣고 배운, 그리고 겪은 부부생활은 확실히 꽃길보단 오르막길이다. 연애만 한다면야 삶의 일부만 즉, 밝은 쪽만 공유할 수도 있겠지만, 부부가 된 후에는 삶의 모든 면을 공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말인 즉, 삶 그 자체를 함께 통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삶은 알다시피 천국과 지옥 사이의 모든 스펙트럼을 포함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따뜻한 봄날의 벚꽃놀이만 즐길 사람이 아닌, 기나긴 여름과 혹독한 겨울을 함께 견딜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과연 삶이 쉬운 사람이 누가 있을까. 때로는 복잡하고 난해한 퍼즐같은 것이 인생이다. 이 퍼즐을 함께 풀어나갈 동반자가 생긴다는 건 참으로 든든한 일이다. 그런데, 그 동반자가 나와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킨다면? 그 삶은 더더욱 나락으로 빠져들 게 분명하다. 어쨌거나 나는 이 퍼즐을 함께 풀 사람에게 ‘행복만을 주겠다고’ 감히 약속할 수 없다. 어떤 결혼생활은 싱글일 때보다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당신이 사랑하며 살겠다면, 부디 자신의 생각을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 연애 (혹은 결혼)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 하고.
인간은 누구나 성장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이건 ‘성장해야지!’라며 다짐하며 산다는 게 아니라, 태생적으로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것이다. 몸에 상처가 나면 생체시스템이 상처를 치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듯이, 마음도 결코 후진하는 쪽으로 설계되지 않았다. 막막하기만 한 삶의 고개들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이처럼 성장해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성장은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다.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한다.
‘삶은 네 안전지대의 끝에서 시작된다.(Life begins at the end of your comfort zone)’라는 말이 있다. “컴포트 존(Comfort Zone)” 즉 안전지대란, 스트레스가 없는 안전하고 쉬운 영역을 뜻한다. 그런데 그 안전하고 쉬운 범위를 벗어날 때라야 한 단계 올라서는 성과를 획득한다. 수영선수가 고통스런 훈련을 통해 자신의 최고기록을 깨는 것도, 피아노 연주자가 피나는 연습을 통해 쇼팽의 까다로운 곡을 완벽하게 연주해낼 수 있는 것도 안전지대를 넘어서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쉬운 범위에서 여유있게 연습 했다면 향상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의 평생 숙제인 영어실력을 늘리려고 해보자. ‘하이, 하와유. 아임파인땡큐 앤뉴’만 해서는 편하기야 하겠지만, 실력이 느는 것을 기대할 순 없을 것이다.
연인(부부)이 어렵고 복잡한 삶을 잘 겪어내기 위해서는 성장해야 한다. ‘꽃길’만 걸어서는 결코 단단해질 수 없다. 갈등하고, 고민하고, 거리를 조율하고, 때로는 다투고, 시련을 같이 겪어내는 동안 그 커플은 어느새 아주 단단한 끈으로 이어진다. 쉽게 깨어질 수 없는 결속력이 생긴 것이다.
연애나 결혼생활이 쉽고 재밌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언제든지 고급 음식점에서 맛있는 걸 먹을 수 있고, 명품을 척척 선물하고, 애인이 힘들어하면 언제라도 훌쩍 해외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까지 있다면. 거기다 성격은 어찌나 잘 맞는지 갈등도 없고, 심지어 양가 부모님도 두 손들어 환영해주어서 결혼준비에도 어려움이 없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하지만 알다시피 정말 비현실적인 얘기다.
우리는 계속해서 컴포트존의 경계를 넘어서는 장애에 맞닥들일 것이다. 둘 사이의 갈등이 될 수도 있고, 둘이 함께 헤쳐나가야 할 외부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또는 한 개인이 겪는 시련이지만 연인이 같이 아파해주고 지지해주면서 그 시간을 넘어서야 할 수도 있다. 그런 위기들을 겪으면서 어떤 커플들은 이별을 하고 또 어떤 커플들은 돈독해져 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츠네오와 조제의 이별이 전자의 경우일 것이다. 걷지 못하는 아이, ‘조제’는 츠네오를 만나면서 그에게 온몸을 의존하기 시작했다. 전동휠체어 대신 항상 츠네오에게 업히기를 바랐다. 어쩌면 자신의 모든 결핍을 츠네오가 감당해주길 내심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츠네오는 그 관계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별을 택한다. 둘 다 어렸고 서툴렀기 때문에, 영리하게 삶의 무게를 나눠지지 못했던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혼자가 되어버린 조제를 떠올릴 때면, 나는 혹시라도 나의 짝에게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지는 않는지 복기하게 된다. 내가 온전히 져야 할 어떤 무게를 그에게 전가해버리지 않았는지, 그와 함께 나눠져야 할 과제를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단단해지려고 매순간 노력한다. 내가 씩씩해지는만큼 그의 어깨에 지고 있는 무게도 함께 나눠질 수 있을테니.. 언제라도 컴포트 존의 너머로 함께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존재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앞으로 내가 마주할 예상하지 못할 어려움이나 갈등도 두렵지 않다. 그 때마다 우리는 다시 함께 고민할거고 아파할 것이다. 가끔은 약해질 때도 있겠지만 머리와 마음을 맞대어 결국 건너갈 것이다. 그만큼 성장해 있을 우리의 모습도 기대된다.
우리는 결코 안전지대에서만 살아낼 수 없다. 우리마음은 이미 그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늘 불안에 휩싸인다. 명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래서 더 미래가 두렵고, 낯선 것은 피하고 싶고, 새로운 사랑 앞에서 주저한다. 그런데 사랑을 시작했다면, 이제 그 불안의 세계를 이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이 꼭 안전지대가 아니어도 괜찮다.
단지, 당신의 연애와 결혼생활이 핑크빛으로만 칠해지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다양한 온도를 받아들여 오르막길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새로운 인연을 찾고 있다면, 안전지대를 함께 즐길 사람이 아닌 불안이 도사리고 있는 미지의 세계를 함께 견뎌낼 사람을 꼭 찾아내라고. 삶의 무게를 함께 기꺼이 나눠지고 싶은 사람을 만나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