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감정을 붙잡지 마오
제가 불안을 잘 다룰 수 있게 된 데에는 '감정을 보는 것' 이 큰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알아차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감정과 나를 동일시 하지 않고 타인을 보듯 거리를 두고 감정을 바라보면 어느정도 다룰만한 것이 됩니다. 십년가까이 내 감정을 부지런히 바라보다보니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스펙타클합니다. 어찌나 변화무쌍한지 아직도 놀라워요. (제 감정이 유난히 변덕스러운 건지, 제가 작은 변화도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게된 덕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휙휙 변하는 감정을 보면서. 그 감정으로 인해 생겨나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 깨닫습니다. 서운한 감정 때문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에 집착했던 것, 피곤하고 무기력한 느낌 때문에 모든 걸 다 때려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생각에 집착하여 행위로 옮겨가는 순간 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는게 막막하다고 느껴졌던 순간이 있으셨을 거에요. 저 또한 그랬습니다. 여전히 문득문득 '와...사는 거 너무 하드코어야.' 하며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몸이 더욱 무거워지고 막막해집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마음을 그냥 가만히 지켜보기만 합니다. 생각으로 인해 무언가 결정하거나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 생각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아 내가 이런 기분이구나. 이런 생각이 떠올랐구나. 알아봐주고. 그저 'ㅇㅋㅇㅋ 알았엉~'합니다.
그러다가 어렵게 몸을 일으켜 청소를 하려고 환기를 하고, 신나는 음악을 틀면 어느새 '옴뫄나 별거 아닌데?' 하면서 뭐든 다 가볍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입니다.
이런 일도 있었지요. 사람이 너무 두렵고 지긋지긋한 그런 날에는 누구도 만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차마 취소할 수 없는 약속을 가다가 거리의 활기 속에서 '뭐 사는거 별거 있나' 싶습니다. 어김없이 제 주위에는 좋은 사람이 있다는 걸 메세지 한 통을 통해 알게 되고, 우연히 목격하게 된 누군가의 작은 친절을 본 순간 무언가가 툭 떨어져 나갑니다. 감정으로 인한 나의 어떤 판단, 순간의 상황속에서 어쩌다 생겨나 버린 날카로운 생각들, 그 것에 대한 내 고집. 그 것이 떨어져나간 것이겠지요.
감정이 순간순간 변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아무리 무거운 감정 속에 있더라도 나는 그 것을 결국엔 벗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가수이자 배우인 아이유도 기분이 안좋을 때는 '이 감정에 속지 않으려고 한다.'라고 했지요.
물론, 감정이 변한다는 사실은 즐거운 기분도 결국엔 변한다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떠나보낸 기쁨은 기어코 또다시 만나게 될테니까요. 그리고 즐겁지 않은 기분을 느끼지 않는다면 즐거운 기분을 알 수도, 즐길 수도 없었을테니까요.
이제 저는 숨막히는 우울감이나, 수치심, 외로움과 같은 피하고 싶은 감정이 떠오를 때에 오롯이 마주하려고 애씁니다. 그대로 바라보고 알아봐 줍니다. 'ㅇㅋㅇㅋ 너구나? 또 왔네' 하며 반갑게 맞아줍니다. 그리고 기억합니다. 즐거운 기분이 들 때 두 배로 더 누리기 위해서요.
오늘은 귀여운 무기력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오래 머무르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나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밖으로 나서고 사람을 만납니다. 어차피 떠날거라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내면 좋을 것 같아서요.
작가, 상담심리사 김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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