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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Sep 06. 2024

잘 살아보고 싶을 때, 잘 쓰고 싶을 때

추천 산문집 <고쳐쓰는 마음>


긴 터널을 지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세상이 있다. 캄캄한 밤을 정면으로 마주해 본 사람만이 이해하는 지점이 있다. 이 책은 아마도 그런 사람의 눈으로 본 세상, 사람, 자신의 내면을 기록한 글의 모음 같다.


책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로 어떻게 글을 쓰는 일이 나를 돌보는 일이 될 수 있는지 알려준 이윤주 작가의 신간이다. 오래전부터 그녀의 글을 읽으면 괜히 나도 글을 쓰고 싶어지는 마음이 일어서, 종종 그녀의 책을 애용(?)해왔다. 그런데 이번 책은 조금 더 확장 된 느낌이다.  세상과 나를 잘 보고 싶어지고, 잘 이해 해보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잘 살아보고 싶어진다. '나를 잘 데리고 사는 일' 그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숙제가 아니던가. 작가가 긴 우울을 지나며 해진 마음을 고치고 또 고치며 살아온 이야기들이 어쩐지 내게는 큰 힘이 된다.  힘빼고 그냥 살아도 된다고 자꾸 말해주는 것 같아서...


해진 마음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 잘 살아가면서 마음에 담긴 것들을 글로 잘 내어보고 싶은 사람들(글쓰기에 관한 글은 아니지만, 그녀의 글을 읽으면 잘 쓰고 싶어진다니까!! ) 카카오브런치는 왜인지 그런 분들이 많이 모여있는 것 같아 이 곳에 꼭 추천하고 싶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과 더불어 누군가의 진실한 내면을 엿보는 즐거움(?)을 누리시길.








<책 속에서 모은 문장들>


다시 맞은 봄. 고궁에 가서 세순과 꽃봉오리들을 보았다. 움직어야 할 때를 절로 알아차리는 생명들은 매년 신기하고 감격스럽다. 움직여야 할 때를 위해 멈춰있던 때가 그들에게 있었겠지. 나의 마흔도 사라져 버린 게 아니라 그 다음을 위해 잠시 멈췄던 걸까. 겨우내 모든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맨몸을 드러낸 채 서 있던 나무들처럼.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돌아온 계절만큼 늙어 있긴 하지만, 직장도 없고 갈 데도 없고 가진 것도 없지만, 사람은 원래 생의 절반쯤에서 길을 잃곤 한다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않기로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었더라도. 중요한 건, 늦었음에도 그냥 하는 마음.   - 21쪽, [마흔, 멈춤] 중에서



초등학교 1학년, 몸이 약해 교실에서 자주 토했다. 담임 김란수 선생님. 어쩔 줄 모르는 아이의 더러워진 책상을 치워주셨던. 매번. 그저 비뚤어진 옷깃을 만져주듯. 서툰 가위질을 도와주듯. 아픈 아이가 창피를 배우지 않게. 안 아픈 아이가 혐오를 배우지 않게. 고맙습니다, 했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쑥스러워서 그랬다.   -160쪽, [쑥스러워서] 중에서



"인생이 정말 한낱 꿈이라 해도, 그래서 허무하다고 해도, 우리가 좋은 꿈을 꾸면 기분 좋잖아? 기왕 꿈을 꿔야 한다면 좋은 꿈을 꾸도록 노력해 보는 거지. 이불도 빨고, 자기 전에 샤워도 하고, 향수도 좀 뿌리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잠들기 전에 나쁜 생각 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고. 미루었던 사과나 용서 같은 것도 하고. 나에게 가장 큰 사랑을 주었던 사람과 함께 있는 상상도 하고."

 이제 그들도 다 알겠지만.

   - 225쪽, [한바탕 꿈이라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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