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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Aug 07. 2016

마음의 상처에 필요한 건 공감이라는 반창고

내 상처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주세요

 


이제 출근 전에 칼질은 절대 안 할 거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잠이 덜 깬 상태로 출근 준비를 하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사과를 먹겠다고 씻은 사과를 썰다가 손가락이 깊이 배었다. 순식간이었다. 웬 피가 그렇게 많이 나는지, 안절부절못하는 와중에 피는 뚝뚝 부엌에, 바닥에, 티슈를 가지러 가면서 또 방바닥에 떨어졌다. 우선은 휴지를 손가락에 여러 번 돌돌 말아 상처부위를 누르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무섭고 아프기는 하고,  출근은 해야겠고.. 어쨌든 잠은 확실히 깬 상태로 정신없이 집을 나섰다. 막연하게 겁이 나고 서러웠다. 예전에 같이 자취생활을 했던 (지금은 애엄마가 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이상태에서 어떻게 조치하는 게 좋을지 물어보기 위해서였지만, 그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일에 있어서는 좀처럼 엄마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 편이며, 남편은 현재 해외근무 중이다.)

그 친구도 별수 없이 '병원을 가야 한다, 약국부터라도 가보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었겠지만, 난 사실 전화통화를 했다는 자체로 마음이 좀 나아졌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무방비상태에서 당한 이 상황을 혼자서 감당하긴 어려웠던 걸까.


난 당분간은 사과를 먹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출근도장을 찍고 직장 사람에게 양해를 구한 뒤 병원을 찾아 나섰다. 병원이 문을 열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다행히 아주 작은 약국이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 선생님이 앉아계셨다. 지루한 표정으로 컴퓨터를 보고 있던 약사 선생님은 내 상처를 보고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재생 밴드 하나를 꺼내 주며, 가격부터 대뜸 말했다. 나의 겁에 질린 상태에 비해서 그는 너무나 기계적인 말투였다. 내가 '소독 안 해도 되는 걸까요'라고 초조해하며 물으니(사실 재생 밴드도 직접 붙여주셨으면 했는데..) 그제야 '깊이 베이긴 했지만 살점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지혈을 잘해오셨어요. 이거 붙이면 돼요.' 하는 것이었다. 병원에 갈 일까진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맘이 들었지만, 겁에 질린 내 상태에 비해 너무 무뚝뚝하게 말을 하는 바람에 멋쩍기도 하고 괜스레 서운하기도 했다. (죄 없는 약사에게 왜??) 지금 생각해보면 약사가 환자의 놀란 가슴까지 달래줘야 한다는 역할은 없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거즈 붕대의 플라시보 효과.

결국 그렇게 회사에 돌아갔다. 여전히 휴지를 돌돌만 채로, 한 손에는 재생 밴드를 들고 터덜터덜.  '별거 아닌데 내가 너무 유난 떨었나. 피나는 건 정말 무서웠는데.. 힝' 이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같은 층에 있던 친한 언니가 소식을 듣고는 손가락에 붙이기 좋은 재생 밴드를 준 것도 모자라, 거즈 붕대와 흰 반창고를 가지고 와서는 손가락에 이쁘게 말아주었다. 베인 부위가 마디 부분이라 구부러지면 상처가 아물기에 좋지 않을 거 같아서였다. 붕대를 감은 덕분에 난 적당히 더 환자 같아(?) 보였고, 내 상처는 충분히 보호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괜스레 마음도 아무는 느낌이었다. 언니는 걱정스러워하면서도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장난스럽게 '삼각 붕대 감아줄까? 나 교련시간 때 배웠다고' 하며 농담을 하기에 나는 한술 더 떠서 '난 교련 만점이었는데요?.' 하며 키득키득 농담을 주고받았다. 어느새 내 상처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진 듯했다. 거즈 붕대의 플라시보 효과였을까. 신기하게 통증도 많이 완화되었다.


나 혼자서는 이렇게 거즈붕대를 감지 못했을거야

생각해보니 나는 출근길  내내 겁이 나서 상처부위를 들춰보지도 못했는데 약사 선생님이 뭔가 무뚝뚝하게 '뭘 이거 가지고 그래요'라는 듯한 말투로(물론 약사 선생님은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했던 게 내심 서운했나 보다.  내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직접 치료해줄 정도는 아니었어도,  "피가 많이 나서 아침부터 놀라셨겠네. 그래도 다행이에요. 지혈을 잘하셨어요. 재생 밴드를 이렇게 이렇게 붙이시고, 며칠 아프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상처 부위가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시고요.'라고 해주셨다면 어땠을까. 약국 선생님이야 워낙 많은 환자를 만나다 보니 몇 센티 정도 칼에 베인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쩜, 그분은 과거에 별것도 아닌 일에 습관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여자 친구 때문에 지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서운해 말아야지.)



마음의 상처는 타인이 무게를 잴 수 없는 것.

그러다 문득 지난 일이 생각이 났다. 내가 힘든 일을 경험하던 시기의 일이었다. (누구나 그런 순간은 찾아오고야 만다.)  엄마는 건강이 안좋아져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셨고, 거기다 경제적인 문제까지 겹쳐 나는 자발적으로 휴학을 하고 레스토랑에서 서빙 알바를 하면서 생활했다. 어느 날은 친구와 긴 전화통화를 하다가 울먹거리며 힘들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녀는 개구쟁이 같은 말투로 "야. 힘들지 않다고 생각해! 그럼 괜찮아져."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대화 주제로 대뜸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스물한 살이었던 그때의 난 지금보다 훨씬 나약했었으며, 비교적 평탄한 성장기를 보낸 덕분인지, 처음으로 느껴보는 삶의 무게를 힘겹게 견디어내는 중이었다. 스스로 괜찮아지기 위해  좋게 생각해보기도 하고, 별거 아닐 거라고 위로도 해보았지만 그 나이에 감당하기엔 많이 벅찼던 게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던 결정적 계단 중의 하나였던 것이라 생각된다. 그 이후에 많이 담대해졌던 건 사실이니까.

어쨌든 그 당시 그 친구의 위로(?)는 아픈 곳이 다시 또 찔리는 기분이었고, 괜히 말했다는 후회도 들었다. 이 문제로 온통 마음을 쏟고 며칠을 울었는데,  나는 '별것도 아닌 일'에 '유난 떠는' 개복치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은 겪어야 할 일을 겪었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하고, 그 시기를 통해 내 멘탈이 단단해진 것도 감사할 따름이지만, 그때 그 순간만큼은 아픔을 평가받기보다는 '공감'과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다.


넘어진 아이에게  '호오~~'를 해주는 이유

어린아이의 상처치료에는 '호~'가 필수 아닐까요

친구가 내 고통을 별거 아닌 것처럼 말했던 게 왜 그리 섭섭했던 걸까. 그녀는 당연히 내가 겪는 일을 겪어보지 않았고, 어느 정도로 어떻게 얘기를 들어줘야 하는지도 모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아팠다. 마치 넘어져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야 피도 안나네, 뭘 울고 그래 뚝. 그만 징징대'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뼈가 부러지거나 피가 나지 않았더라도 아이는 놀란 게 먼저다. 순식간에 일이 일어났을 것이고, 아이들은 더욱이 이런 일에 대한 경험이 많이 없으므로 더 크게 놀란다. 그럴 때, 대부분의 엄마들은 "우리애기, 많이 놀랐구나. 아프지~엄마가 호오 해줄게 호오~~"라고 아이의 상처를 쓰다듬어 준다. 이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마는 정말로 아이들은 울음을 그친다. 상처가 크지 않을 경우, 아이에게는 상처의 아픔보다는 '놀람'이 더 큰데, '호오~'는 그걸 달래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도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엄마에게로 와서 '호오~'하는 시늉을 보이는 것 아닐까. 본인이 실제로 '호오'를 통해 나아졌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우리는 우리가 힘들 때, 타인이 그 문제에 대해 어떤 이해가 없다 하더라도 (사실 우리는 겪어보지 않은 시련에 대해서는, 그 아픔이 어떨지 가늠할 수조차 없으니까) '너 많이 힘들구나.' 한마디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사실, 들어주기만 하는 것으로, 옆에 있어주기만 하는 것으로도 마음의 상처는 조금 나아질지도 모른다



똑같은 시련을 경험한다고 하더라도

상처를 받아들이는 에어백은 저마다 다르다.

이 세상의 사람의 수만큼 상처를 받아들이는 방법도 다양하다. 또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문제에서는 남들보다 무딜 수 있는 반면 어떤 문제는 심각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 사건의 종류에 따라. 충격의 정도가 다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치유하는 방법도 제각각이라서, 어떤 이들은 술이 최고의 치료약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운동이 그러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충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렇다. 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통된 치료책은, 나의 시선에서  얘길 들어줄 (최소)한 명의 사람과 따뜻한 말 한마디 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감이고, 위로이니까.


누가 봐도 화자가 자신의 '아픔'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 '별거 아니네'라며 그것의 무게를 평가하고, '의지박약'취급을 해버린다면, 이 상처를 극복하고 더 단단해지는 대신에, '나는 멘탈이 약하구나' 하며 의기소침해지거나,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여 스스로를 더 아프게 할 수도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소중한 사람이 자기에게 다가와 어렵게 마음의 상처를 내보인다면, 혹여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모른 척 반창고를 슬쩍 붙여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면 된다.

그 시간을 잘 견디어 자연스레 그 상처가 아물고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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