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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Nov 07. 2016

상상력,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이해받고 싶은 마음들


여 : 오빤 정말 내 맘을 몰라!
남 : 미안해~
여 : 뭐가 미안한데?
남 : 다 미안해.
여 : 대체 뭐가 미안하냐고.
남 : .........


다소 극단적이고 심플한 대화이긴 하지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패턴 같다. 왜 이런 대화가 패턴처럼 굳혀져 버린 것일까.




싸움의 해피엔딩은 한쪽의 무조건적인 저자세가 아니다. 

 싸움의 발단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싸움의 종결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여야 할 것이다.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물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사과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도 별로다. 그러나 더 별로인 건, 이해할 노력은 않고서 상황을 수습하고자, 마냥 '미안해~ 미안해~'만 돌림노래처럼 늘어놓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내가 그 후자에 속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무서워서' 였다. 지금보다 더 소심했었던 나는 의견충돌의 상황을 견디지를 못했다. 상대방의 기분이 상했거나, 서로 날을 세워야하는,  의견차이로 인한 대립이 느껴지면 곧바로 꼬리를 내리고 '미안해, 죄송합니다.' 카드를 던졌다. 그 차가운 공기를 버틸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 중 몇몇은 '얘는 무슨 미안봇이야?'하고 어이없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그 때보다 조금은 성숙해진 것 같다. 나는 이제 자동반사적으로  미안 카드를 내밀지는 않는다. (냉랭한 상황은 여전히 두렵지만) 대신, 어렵더라도 대화를 더 많이 시도한다. 왜냐면 상대방의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알게 된 중요한 사실.

의견대립의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평화적으로 이어가는 이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 능력은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 온전히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

여기서 말하는 상상력은 공상과학영화를 만드는 상상력이 아니다. 내가 온전히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능력이다. 상대방의 현재 조건들과 마음상태를 가늠하여 상상해보는 능력이다. 그러니까 창의력보다는 공감능력에 더 가까운 인지적+감성적 능력이라고 하겠다.


영화'코블러'의 한장면. 이 영화는  "다른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기전에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속담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이 상상력을 위해서는 첫째로, 그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는 (인내로이) 많은 얘기를 들어 봐야 한다. 우리는 대체로 우리가 알고있는 서너가지의 사실들로만 그 사람을 판단한다.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상황까지 고려해가며 상대방을 이해하기엔  역부족인 탓이다. 오히려, 몇가지의 부정적 사실들에 기인하여 편견을 만들고 선을 그어버린다. 모든 상황들을 다 알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몇몇가지의 핑계로 '그런사람'으로 분류해 버리고 합리화시키는 쪽이 편하기 때문일 거다.



누구나 상상력은 이미 가지고 있다.

온전히 그 사람이 되어본다는 상상의 활동은 생각보다 어렵고, 또 생각보다 쉽다.


어려운 이유는,

A라는 사람이 B라는 문장을 내뱉게 된 배경은 꽤 복합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패턴이나 말하는 습관을 들여다보면 화자의 현재상황뿐만 아니라 성장과정이나 심지어 부모님의 성격까지 영향을 주는 경우가 더러있다. 그리고 그런 배경들을 헤아리고자 하면 차이는 너무나 깊어서 차마 내 이해력이 닿지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상상력을 발휘하는게 생각보다 쉽다는 쪽에 무게를 더 두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그런 능력이 이미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 꽈당 하고 넘어지는 꼬마아이의 모습을 목격했다. 아이는 울고 있고 무릎에는 피가 난다. 그 아이를 걱정하며 일으켜주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대부분, 타인이 다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마치 내가 다친 것처럼 걱정한다. 그 사람이 내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마음아파 할 수 있는 건, 상상력 때문이다. '마치 내가 무릎이 까진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상상되어지기 때문이다.


이 것은 사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측은지심'과 가까운 얘기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며 사람은 누구에게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고 했다. 이 측은지심이 인(仁)의 단서라고 설명했는데, 인 이라는 것이 아마도 우리가 타인을 위해 갖는 상상력을 설명한 것은 아닐까 한다.  모두들 우물에 빠진 아이를 보며 갖는 마음을 예시로 든 것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 것이 선이나 악이 아니라, 중립의 능력이라고 보고싶다. 상대방이 되어 생각해보는 능력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이 중립의 것은, 성장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서 무뎌지거나 더 민감해지면서 차이를 갖는 것 같다. 어쨋든 누구에게나 있는(혹은 감추어져 있는) 능력인 것은 분명하다.


국내에도 잘 알려져있는 발달심리학자인  피아제도 아동의 발달단계를 설명할 때, 6~7세 정도가 되면 아이들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이타적 이해능력이 생겨난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이미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아파서 누워있으면, 걱정하고 울먹거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결국,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상상력은 발달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능력이기도 한 것이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듣고 싶은 말.  

 누군가와 대화가 잘 통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 준다는 믿음이 있을 때 그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진다. 그런 사람과는 어떤 오해가 빚어진다고 해도, 쉽게 사이가 틀어지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줄 것이기 때문에.


반대로,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해줘야 하는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당연히 나를 이해해준다는 믿음도 생기기 어렵다.


마음이 잘 맞는 남녀는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 마음을 합쳐야 할 일이 늘어난 부부의 관계는 연인일 때보다 의견충돌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럼에도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사람과 함께하기로 결심했다는 건, 나를 이해해준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기에.



이전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요즘들어 문득 참 듣기 좋은 말이 있다.

친구에게도, 남편에게도 이런 말을 들을 때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그 한마디는 바로, "그럴 수 잇겠구나." 이다.

혹은 "어떤 기분인지 알것 같아" .



"그럴 수 있겠구나.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어떤기분인지 알 것 같아.


별거 아닌 말인데, 내가 억울한 일을 얘기할 때나, 감정이 격해졌을 때 이 한마디의 힘은 엄청난 것 같다.  아마도, 내 생각과 기분을 있는 그대로 이해받는다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느낌과 일맥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럼 다시 처음에 제시했던 대화로 넘어가보자.


여 : 오빤 정말 내 맘을 몰라!
남 : 미안해~
여 : 뭐가 미안한데?
남 : 다 미안해.
여 : 대체 뭐가 미안하냐고.
남 : .........


위 대화에서 여자는 남자를 시험하기 위해서 '뭐가 미안한데'라고 따져물은 것이 아닐 것이다. '미안해'로는 부족한 무엇. 자신의 마음이 이해받고 있음을 확인하려는 게 아니었을까.


친구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면 그건 정말 슬픈 일일 것이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가 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야말로 군중속의 고독이다.


우리는 함께하지 않으면 삶의 의미를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무인도에 살지 않아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진짜로 함께한다는 건, 이해받고 이해하는 것을 내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고, 상상력이야말로 타인을 위한 가장 따뜻한 지적능력이 아닐까 싶다.




타협점을 가지지 못했더라도 괜찮다.

끝끝내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더라도, 내가 너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너가 나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소통 불통의 이 시대에 서로가 서로를 헤아린다는 건 어쩌면 기적과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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