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령 Jul 28. 2016

미안하다는 말이 뭐 그리 어려운가요

서로를 지켜주는 네 글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미안하다는 말에 박한 사람이 있다. 내가 그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어도, 제삼자의 상황에서 어떤 사건을 볼 때, 잘못한 사람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지나가는 것을 목격하면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런 사람은 다른 상황에서도 '미안하다'는 표현을 좀처럼 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미안하다는 말을 놓치지 않고 꼭 전하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화날뻔한 마음을 녹여버리는 사람도 있다. 단지 '미안해요'라는 네 글자가 아니라, 표정이나 공손한 태도에서 그 자신의 실수로 말미암아 상대를 적대적으로 만드는 일이 없게 한다. 설령 큰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사람은 필히 '고마워요'라는 말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분명하다.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이들의 속사정은 저마다 다를 것이나, 대개는 습관이거나, 자신의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혹은 가정교육의 문제라고도 추측해본다!)  상대보다 더 낮은 위치가 되기 싫은 성격인 경우. 또 좀처럼 자기 실수를 인정하기 싫은 사람일 것이다.  굳이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도 남 탓, 다른 조건 탓으로 얼마든지 둘러댈 수 있으니까. 그런 변명들을 늘어놓고 (혹은 아예 침묵하며)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내는 것이다. '나는 잘못 같은 거 하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위장하는 것 아닐까. 그런 행동이 자기 이미지를 지켜낸다고 믿는 것 아닐까. 안타깝게도 정작 주위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겠지만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적절한 때가 정답처럼 정해져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전적으로 그 사람 잘못이 아닐 때에도 '미안해요~'라는 말을 함으로써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구태여 문제를 키우지 않는 경우를 보았다. (문제 그 자체 이상으로는 일이 커지지 않는 것) 그것으로 인해 상대 또한 흥분을 누그러뜨리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기도 하는 것을 보며 '미안해요'라는 말의 힘을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이 입 밖으로 꺼내기 참 힘든 말이지만, 그  말의 역할은 상당히 범위가 넓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일상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는 사람 탓에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버스에서 기사 아저씨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앞에서 있던 여자의 하이힐이 내 발등을 찧었다. 나는 악 소리도 못할 만큼 너무 아프고 놀라서 앞사람을 쳐다보며 그 여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여자는 내 얼굴을 흘낏 보고 내 발을 흘낏 보더니 그냥 고개를 돌렸다. 자신도 급정거한 버스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듯 짜증스러운 얼굴 이었다. 옆에 남자 친구로 보이는 사람도 나를 흘낏 보고는 여자 친구를 자신 쪽으로 당기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내가 그 여자의 힐에 발등이 찍힌 건 버스의 급정거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그녀의 태도는 분명 나를 불쾌하게 했다.

그녀가 "앗 미안해요."라고 한마디만 했다면 나는 분명 "아 괜찮아요"라고 했을 터였다. 그리고 어떤 불필요한 감정도 남지 않고, 내 발등의 상처에만 신경 썼을 것이다. 그게 뭐 별일이라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는 바람에 여러 사람을 한 번에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자리가 '직장상사'가 아닌가 싶다. (모든 직장상사라는 뜻은 아닙니다.)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자신의 어떤 잘못도 아랫사람이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내 친구는 밤을 새 가며 공들여한 일이 팀장의 실수로 다시 전면적으로 수정을 해야 했을 때, 모든 일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사실보다 팀장의 말하는 방식 때문에 더 때려치우고 싶었다고 한다. 로봇 못지않은 무표정한 얼굴로 ' 이거 이렇게 다시 전부 수정하세요.'라고 말했을 때의 당혹감이란. 순간, 저 인간은 당신의 실수로 직원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을 정도란다.

그럴 때 "미안해요. 이걸 다시 수정해야 되게 생겼네.." 혹은 "미안해요. 고생 많이 했는데 다시 힘을 내서 해치웁시다." 같은 말을 딱 한마디만 해주었더라면 사원들이 다시 작업하는 일이 그렇게 분했을까.


 버스에서 하이힐에 내 발등을 찧은 사람처럼 의도치 않게 남에게 피해를 준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로서 자신의 잘못으로 모두 돌리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또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내 잘못도 아닌데 내 잘못이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고, 굳이 애써 해명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당연히) 내가 잘못을 한 것으로 넘겨짚는 경우도 더러 경험했다. 그럴 땐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참으로 못마땅하다. 내키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필요 이상의 사과로, 없는 잘못까지 자신의 잘못으로 만들어야 하는 건 분명히 과잉 태도다.

다만, '미안해요'라는 말 한마디를 아끼는 바람에 자존심은 지켰을지언정 서로 불필요하게 감정이 소비되고, 분위기를 흐리고, 관계가 손상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든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 분명한 사실은,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은 듣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더 높아지는 말인 것은 분명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