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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Jun 23. 2018

"사랑해"보다 중요한 말

감정을 토닥여주는 대화는 멀리있지 않다

수다가 우리를 지켜준다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다양한 캐릭터의 메신저 이모티콘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재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글자들을 사용하지 않고도 기분을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일 것이다. 대화에 생기를 불어넣는 촉매제가 된다. 기분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이모티콘이 대신해주고 있다. 

이렇듯 일상적인 대화에서 감정이나 기분을 주고받는 것은 관계에서  상당히 핵심적인 부분이다. 


친구사이에서 한쪽이 영혼 없이 반응하면 대화는 금새 갈 길을 잃는다. 또 연인이나 부부가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들을 공유하지 않게 된다면 면역력이 약해진 신체처럼 쉽게 부서진다. 그건 낭만을 잃은 것보다 더 슬픈 일이다. 서로의 표정을 읽어내지 못하고,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말할 수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게 되었을 때 관계는 참으로 삭막해진다.


오늘 직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일들로 내 기분이 어땠는지, 퇴근길 지하철에서 어떤 불쾌한 일이 있었는지 툴툴거릴 수도, 함께 웃을 수도 없다고 생각해보라. 그저 공과금, 대출금과 같은 돈 얘기나 큼직한 집안행사에 대해서만 얘기한다면 그것은 부부라기보다는 혼인신고라는 계약으로 이루어진 사무 집단에 가깝다. 그래서 ‘사랑해’라는 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시시콜콜한 대화이다.

출처 : KBS2 <고백부부>


  소통의 순기능 가운데에 하나가 감정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공감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는 내 생각과 감정을 존중받고, 존중해주는 의미있는 과정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매일같이 연락해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의 감정은 시시때때로 변화하고, 엄청난 양의 생각들이 우리 마음을 스쳐간다. 수다는 그저 뻔한 재잘거림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들을 토닥여주는 가장 손쉬운 방식이다.


 먼 곳에 사는 친척보다 자주 볼 수밖에 없는 이웃들은 가족만큼 가까운 관계이다. 오며가며 서로의 표정을 살피게 된다. 자주 마주치면서 자연스럽게 안부를 확인하고,  소소한 희로애락을 공유한다. 

 이 안에서 자동적으로 ‘감정라벨링’(마음에 일어난 일들을 언어화 하는 것)이 일어난다. 이는 내면의 조각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면서 헝클어진 생각들이 정리되게 할 뿐만 아니라, 감정의 찌꺼기가 쌓이지 않게 도와준다. 그래서 얘기치 못하게 부정적으로 화살이 튀어나가는 것을 방지한다. 감정은 결국 흘러가는 것이지만 건강하게 처리되지 못하면 언젠가 말썽을 피울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관계 내에서 이런 역할을 해주고 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프라이빗한 상담사라 할 수 있다. 크고 작은 일상적인 일들로부터 생기는 감정들을 공유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반복되고 지치는 삶에서 이러한 관계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OS와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한 이유


영화 <Her> 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사소한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게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다. 자신과는 무관한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 써주는 일을 한다. 그가 감성이 풍부하지 않고, 마음을 헤아리는 데에 재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직업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테오도르는 아내와 별거 중으로 자신의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 이별 후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지내던 그에게 뜻밖에 친밀함을 나누게 된 상대는 음성인식 인공지능 OS이다. 이름은 사만다. 사람의 형상만 보이지 않을 뿐 하루종일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는 것처럼 여성의 음성과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는 사만다와 친밀한 교감을 한다. 일상을 얘기하고, 고민거리를 나누고 사사로운 감정들을 공유한다. 그러다 그는 사만다에게 점차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출처 : 영화 <Her>


 기계와 사랑에 빠지는 이 말도 안되는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만다는 늘 테오도르의 얘기를 들어주었고 그의 안위를 궁금해 했으며 하루 종일 함께 하면서 같이 웃어주고, 슬퍼했다. 깊은 대화뿐만 아니라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것들을 나누는 데에서 관계는 두터워졌다. 이런 소통 안에서라면 누구라도 점점 단단하게 이어져가지 않을까. 이것은 우정이 되고 사랑이 되고 이웃 간의 정이 되어간다. 

이 같은 대화의 핵심만 잘 파악해도, 우리는 모두 소통의 달인이 될 수 있다. 상대의 말 뿐만 아니라 표정과 몸짓을 통해 그 사람의 기분, 욕구를 알아차리고 이해해주는 것이다. 마음의 안테나를 상대에게 열어두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감정표현에는 의도와 욕구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상대가 이해하게 하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작업은 관계를 진솔하게 만들어준다.

 

서로를 상처주지 않는 대화기법


그럼에도 많은 관계 내에서 소통이 늘 문제가 된다. 오로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데에만 도취되어 있거나, 상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고 타인을 비난하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상담이나 부모교육 때 제안하는 중요한 대화기법이 ‘나 전달법(i-mesaage)’이다.  대게 상대에게 불만이 있을 때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도대체 넌 왜 항상 그런 식이야?’,‘넌 왜 이렇게 내 말을 무시해?’,‘너 그렇게밖에 말 못해?’와 같이 상대를 주어로 하는 문장이다. ‘너’를 주어로 하게 되면 부정적인 표현이 붙기 쉽다. 평가하는 말과 상대를 비난하는 말이 이어진다. 하지만, ‘나와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속상해.’ ‘그런 말을 들으니까 너무 우울하고 비참한 기분이야’처럼, ‘나’를 주어로 두게 되면 문장은 좀 더 부드러워진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효과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대화법이다.

 막상 해보려고 하면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정직한 표현을 돕는 데에는 확실하다. 상대를 평가하거나 비판하는 표현이 줄어들어 오해를 예방한다. 상대방을 비난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갈등을 해결하고 문제를 개선하는 게 목적이라면 유용한 대화 기법이다.


 이런 표현에 익숙해지면 나또한 외부경험으로 인한 스스로의 내면반응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를 포착하고 이해하는 것은 건강한 대화의 기본이다. 



감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혼자서도 이와 유사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글쓰기이다. 마음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은 공간에 제한받지 않고, 간편하기까지 하다.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자유롭게 털어놓을 수 있는 행위다. 마음속에 어질러져 있는 생각들과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쓰기만 하면 된다. 마음속의 장면들을 언어로 바꾸어내는 것 뿐이다. 물론 처음에는 낙서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글쓰기 자체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곤 한다. 하지만 ‘잘 써야 한다’는 생각과,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롭기만 해도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훨씬 덜하다. 오직 자신의 마음일뿐이니 남의 글 보듯이 평가하려는 마음은 접어두어도 된다. 노트와 나, 둘의 대화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어떤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를 고려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신뢰가 깊은 편안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스스로 마음을 헤아려보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만히 살펴보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하고 달래듯이 종이 위에 써내려가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도 몰랐던 감정과 생각들이 어린아이처럼 인정받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시시콜콜한 감정들은 결코 시시콜콜하지 않다. 작가 아이작 싱어(Isaac Bashevis Singer)의 말처럼 우리는 ‘감정의 백만장자’다. 내 안에 있는 백만개의 감정들은 어느 하나 하찮은 것이 없다. 마음의 공간에 드나드는 모든 생각과 감정들이 소중하다. 


다만, 우리가 할 일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창을 열어 환기시키고 타인의 내면과 소통하면서 막힘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친구와 애인, 배우자의 작은 생각과 기분들에 귀 기울이고 함께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그리고 시간을 내어 혼자 글로써 자신의 마음을 정돈하는 자신만의 대화가 이 작업을 더욱 유연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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