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 떡볶이 같은 인생
지난 9월 중순 처음으로 칭다오에서 청소년 문학의 밤이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1부는 ‘내가 말하고 있잖아’라는 이름의 ‘주제발표’ 행사였고, 2부는 ‘제1회 칭다오 경향도서관 문학상’이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문학과 문화의 불모지,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라는 것이 딱히 없는 칭다오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코로나 시국에는 더욱더. 청소년들의 꿈을 위해 소규모 행사로 강행하는 대신에 영상으로 행사를 송출했고,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만들기로 했다.
‘최초딩’ 최원석 작가님과 KONG 출판사 공가희 대표님이 심사를 맡아주신 덕분에 대회에 격을 높일 수 있었고, 책으로 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청소년 작가들에게 인터뷰 자료와 추가 원고를 요청해서 편집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편집을 인쇄할 날짜가 다가와서 편집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직접 편집하게 되었다. 표지 디자인부터 마지막 판권 부분까지 마무리하는 주간이었는데, 거류증 연장에 따른 회사의 복합적인 일들이 겹쳤다. 이번 주만 은행을 네 번이나 갔다. 거기다가 한글학교와 도서관 재외동포재단 사업 신청 기간까지 겹쳐서 매일 일찍 집을 나서고 자정 넘어 집에 들어가곤 했다.
이번 주는 유난히 길게 느껴질 정도로 피곤했다. 정신적인 피로 외에 순전히 육체적인 피로가 누적되었다. 연말은 항상 바쁘지만, 몇 배로 바쁜 연말을 보내다 보니 마음은 괜찮은데, 몸이 축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수상작품집 출간을 위한 달력을 팔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육신을 지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챗만 연결된 분들이 그동안 마음으로 응원했다며 오셔서 달력을 구매해 가시고, 멀리 연태에서(3시간 30분 거리), 위해에서(3시간 거리) 주문해 주셨다. 오랜만에 오신 선생님과 대회 상금을 한 푼도 안 쓰고 기부하고 싶어서 가지고 있었다고... 내가 건네준 빨간 봉투 그대로 꺼내서 어머니 이름으로 달력을 구매해간 작품집 지은이까지... 이런 마음을 받고 사는데, 어떻게 힘이 안 나겠나. 호랑이띠는 아니지만, 호랑이 기운이 솟아났다. 오늘 도서관 1시간 연장은 그런 마음 넘침의 신호였던 거 같다. 내가 퇴근할 때까지 친구 기다린다고 도서관에 머물다가 나가면서 의자 정리하고 간 친구까지... 가족의 부재(10개월 동안 13개월 된 아들과 아내와 떨어져 있다)라는 말도 안 되는 힘듦이 있지만, 이런 마음의 상도 있다. 살면서 이렇게 극단적인 단짠은 처음 느껴봐서 복잡한 감정이지만, '버틸 힘'을 주신다고 생각한다.
책을 만들고 싶다는 청소년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칭다오에 진출해서 본격적으로 책에 관한 일을 하려는(그동안은 중국인을 위한 굿즈와 음반 판매, 콘서트 유치 등에 집중했다고 한다) 교보문고에서 중국 법인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니, 내년에는 더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과 '책'과 '사람'만 생각하고 가다 보면 대통령이 주는 상보다 가치 있는 '추억'이라는 상을, '우리들의 책'이라는 상을 줄 수 있겠지. 그렇게 가려고 한다. 몸과 마음이 단짠을 경험하더니 비로소 '각성'한 거 같다. ‘등대’, 독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구석구석 비춰주는 등대가 되고 싶다. 누가 와서 알아주지 않아도 그냥 빛을 내는 작은 등대가 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지금처럼 함께 하는 이들이 늘어나겠지?
오늘은 정말 빨간 봉투 보고 눈물 날 뻔했다.
매일 도서관에 오시는 분들에게 일주일에 여섯 번 오늘의 문장을 보내드리는데,
아침에 쓴 문장이 오늘 마지막에 느낀 감정을 미리 예측이라도 한 거 같다.
도서관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문장은 산시아 라일런트의 아름다운 그림책 『삶』(북극곰)에서 가져왔습니다.
산다는 게 늘 쉽지는 않습니다. 가끔은 길을 잃기도 하지요.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갑니다. 그리고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ㅡ『삶』(북극곰) 중에서
삶은 언제나 나아갑니다. 우리의 리듬과 상관없이 전진하는 시간 때문에 리듬이 깨지기도 하지만, 그러한 전진성 때문에 많은 것들을 흘려보내기도 합니다. 두려움, 아픔, 슬픔, 분노 등과 같은 감정들은 얄밉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높은 담벼락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새로운 이러한 시절도 지나가고, 새로운 길이 열릴 거라 믿습니다.
그래도 시간에 쫓기는 삶보단 시간을 다스리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하루 보내세요^^
인생을 떡볶이로 비유하자면 아직 지나치게 매운맛과 달콤한 맛이 조화를 이루고 있지는 않다. 따로 노니까. 삶은 계속 나아가니 삶이 끓는 동안 맛이 잘 섞여서 로제 떡볶이 맛이 나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 본다.
최고치의 힘듦과 최고치의 기쁨. 결국 마음이 몸을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