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으로 살아가는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0)

편지를 준비하며


안녕하세요.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입니다.


어떻게 제 글을 읽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드립니다.

이 글을 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을 테니까요.


저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당신도 제가 누군지 모르겠지요. 누군지 모르는 당신에게,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는 당신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아마도 이 편지의 마지막에 다다르게 되면, 저와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사는 지역에 대해 조금은 아시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 편지는 20년 동안 이곳에 살았으나 몇 주 전에 마치 없었던 사람처럼 고국에 돌아간 어느 선배 경계인과 그의 가족에게 바칩니다. 그리고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아빠와 헤어져야 했던 하나뿐인 아들 준서는 한참 뒤에 보게 되겠지만, 아빠는 왜 가족을 두고 이곳에 들어와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라 말하고 싶은 변명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혼자 아들을 돌보고 있는 아내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남기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제가 중국 칭다오에 오게 된 계기와 도서관을 운영하며 수많은 독서모임을 만들고 있는 이유에 대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오디오 기반으로 무언가 남기고 싶어 나디오에 문을 두드렸는데, 최자인 대표님의 친절한 피드백을 통해 용기를 내어 처음부터 지금하고 있는 일들과 앞으로 나아가려는 방향까지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편지에는 당분간 과거의 내용이 나오고, 하루하루 살면서 느끼는 시선들이 나오고, 가끔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이라는 필명과 저의 모든 편지는 '경계인'으로 정리가 됩니다.

먼저 '칭다오'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 당신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가 생각났겠죠? 맥주와 양꼬치, 애석하게도 저는 칭다오에 처음 왔을 때 거리에서 파는 꼬치를 잘못 먹고 호되게 고생한 후론 이곳에서 꼬치를 먹진 않습니다. 맥주 또한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은 아니라서 기대치만큼 말할 수도 없을 것이고요. 이연복 셰프와 백종원 대표가 말했듯이 맥주에는 바지락이 어울립니다. 그럼 칭다오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칭다오는 약 3년 전 1선 도시가 되었습니다. 중국은 1~5선 도시로 도시 등급을 나눕니다. 칭다오는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과 같은 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고 말하기엔 조금 민망한 부분이 있지만, 중국을 대표하는 대도시 중 하나입니다. 이곳 사정상 정부의 일에 대해 왈가왈부할 순 없습니다. 아무튼 이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방인'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교민들이죠. 다른 나라는 '영주권'내지 '시민권'을 취득하면 그 나라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영주권'이 나오긴 하지만, 국가대표 감독급이나 선수급이나 국가사업에 참여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닌 이상 '취업 비자'로 연명하게 됩니다. 1년마다 비자를 연장 받아야 하는 철저한 '이방인'의 신분으로 살아가야 하는 거죠. 말이 1년이지, 요즘엔 3개월만 연장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교민들은 20년을 살아도 '이방인'으로 '중심'이 아닌 '경계'에 머물다 끝내 이방인으로 고국에 돌아갑니다. 마치 이곳에 없었던 사람들처럼 말이죠. '경계인'의 삶은 '고달픔'과 '불안'이 친구처럼 따라나니는 것입니다. '고달픔'을 안주 삼아 '불안'을 이겨내며 나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이방인 중 한 사람입니다. 한때 주얼리의 메카라고 불렸던 이곳에 저는 2016년 7월 12일에 아내와 함께 여행용 가방 4개를 끌고 입국했습니다. 결혼한 지 6개월이 채 안 된 때였고, 러시아 우스리크스에서 낙상 사고를 당하고 큰 수술을 하고 회복하던 중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2년 동안 어학연수를 하고 쿤밍이라는 남쪽 지역으로 건너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2022년 1월 4일(화), 저는 여전히 칭다오에 있습니다.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중입니다. 이곳에 허락이 된다면 2047년까지 있을 예정입니다. 저는 어쩌다가 이곳에 정착을 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왜 한글학교와 도서관을 만든 걸까요? 도서관을 통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중이며, 왜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독서모임은 왜 이렇게 많이 만들고 있으며, 다른 지역에 도서관을 만드는 일은 왜 도와주고 있는 걸까요? 이원하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제 정체는 끝이 없습니다. 저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이 도시의 매력, 경계인의 삶이 가지고 있는 매력도 알려드리겠습니다. 단, 그 매력을 아는 순간, 당신의 걸음이 칭다오로 향할 수도 있다는 사실, 위태로운 경계인의 삶을 동경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미리 경고해 드립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당신에게 어쩌면 저는 수다쟁이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두 가지입니다.

당신이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길, 제가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길.

그리고 한 가지 욕심을 낸다면, 편지를 통해 알려드리는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들을 기억하게 되길.


언제 어떻게 끝낼지 모르는 편지를 부칩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2022. 1. 4. 화요일 시작하는 밤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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