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와 믿음

절기에 순응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절기를 챙기고 계절을 살피며 깨달은 것은,
삶과 믿음 또한 ‘밀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믿음은 흑과 백의 문제,
있음과 없음의 영역.


마일리지에 익숙한 우리는
믿음까지 적립형 마일리지로 착각하며 살 때가 많다.


새벽기도 한 번에 1마일,
그렇게 1,000마일을 모았는데,
소원이 이루어지는 쿠폰으로 교환해 주지 않으면 실망한다.


만물은 절기에 농밀하게 반응한다.
순응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절기는 지각하지 않고,
일몰은 춘분, 빛이 어둠을 역전할 때가 되었음을 알려준다.


언제부턴가 ‘독실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믿음 마일리지가 많은 사람’이라 불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봄이 온다.
성화라는 것이 계단식 마일리지 적립 시스템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는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겨우 출발점에 서기를 반복한다.


겨울에 죽었다가,
봄에 소생하는 생명.
죽었다가 살아나기에 우리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겨울처럼 죽었다가,
봄처럼 소생하는 우리의 심령.
도무지 죽지 않고 살아나기에,
죽이지 않고 살려 주시기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다 주의 것이니,
내가 이룬 것은 하나도 없나이다.


거울을 본다.
“너 어디로 가고 있니?”
라고 묻는다.


일몰을 보고 절기를 가늠하듯,
방향을 살핀다.


나의 기도는 자주 화장실에서 시작된다.


_칭다오에 사는 이방인, ‘절기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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