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라는 우주와 책방이라는 은하수

2021년 142번째 책 x시집 전문 서점 wit n cynical


동네 책방을 애정 합니다. 해외에서 한인 도서관을 운영할 때 가장 힘든 점은 도서 수급인데, 저희 도서관은 총판을 통해 책을 받지 못합니다. 대신 동네 책방에서 원가에 책을 삽니다. 그 책에는 추억 값이라는 게 포함되어 있어 언제나 이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에 있는 책들 대부분은 사인본이거나 책과 어울리는 책방에서 구매한 책입니다. 읽을 책은 이토록 쌓여가고, 이야기도 그만큼 쌓여가서 이제는 풀어야 할 때가 된 거 같아 책과 책방에 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려고 합니다. 책을 하나의 우주라고 하니, 책방은 은하수겠죠.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 갇혀 있는 1년 동안 약 80 개의 책방을 다니고, 500권에 가까운 책을 구매했습니다.


책이라는 우주와 책방이라는 은하수

(책과 책방 이야기)

2021년 142번째 책 x시집 전문 서점 wit n cynical


유희경,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달 출판사)

일은 여태 남아 있고 손님은 여전히 없고 그러나 나는 씩씩해져버렸다. 서점의 씩씩함이란 내일 한번 더 해보는 것. 내일모레도 해보는 것. 찾아오는 사람에게 기꺼이 물을 덥혀 차를 내어주는 것. 대가보다 좋아하는 마음을 앞서 생각해보는 것.

_「청귤차, 따뜻함과 향긋함」 中에서


타짜에서 아귀와 짝귀와 평경장을 소개하는 식으로 시집 서점을 이야기하자면, 일산에 책방 이듬, 제주에 시인의 집, 혜화동에 위트 앤 시니컬이 있다. 이외에도 시집이 많은 서점은 서교동 진부 책방 스튜디오와 경주 어서어서가 있지만, 내가 가 본 서점 중 시집 전문 서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이 세 곳이다. 각각 개성이 다르다. 책방 이듬은 정말 다양한 시집이 있고(황구하 시인의 시집을 본 유일한 책방), 많은 시집이 없다(신간이라고 무조건 입고되지는 않는다). 제주 시인의 집은 사인본과 절판본과 초판본과 배경 맛집이다. 무엇보다 문우들에게 책을 직매한다는 말이 멋진 바다 풍경보다 더 멋있었다.


그리고 위트 앤 시니컬, 거의 모든 시집이 있는 곳이라고 하기엔 시집의 종류가 너무 많지만, 어쨌든 찾고자 하는 시집을 거의 다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첫 방문 때 시집 추천을 부탁드렸고, 좋아하는 시인을 묻자, 정호승 시인 이름만 생각나서 ‘정호승 시인’을 말씀드렸는데, 다양한 시인의 시를 추천해 주셨고, 나는 또 그 시집을 다 구매했다. 유희경 시인의 시인도 구매하며 사인을 부탁드렸고, 사인을 부탁드리며 칭다오라는 곳에서 도서관을 운영한다고 말씀드렸고, 칭다오 교민 이름으로 사인을 부탁드렸는데, 시집 3권을 더 챙겨 주셨다. 위트 앤 시니컬에 또 와야 하는 이유가 생겼고, 공공 그라운드 텍스트 클럽과 어우러져 단골은 아니더라도 내 기준으로 잊히지 않을 정도로 방문하게 되었다. 지금도 도서관에 꽂혀 있는 시집 중 책머리에 위트 앤 시니컬의 도장이 찍힌 책을 보면 잠시 나선형 계단과 시집과 안온한 공기와 사가독서의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를 생각하게 된다. 위트 앤 시니컬의 보물 ‘낭독회’, 난 그 보물을 탐하는 사람이고, 기어이 도서관에 시 낭독 모임을 만들었고, 여행 비자 발급이 가능해지고 격리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시인들을 모시고 낭독회를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공공 그라운드 텍스트 클럽 맛은 달콤했지만 그에 따르는 향수는 오로지 내 몫이다. 아무튼, 내가 시에 빠지게 된 계기는 여러 단계가 있지만, 위트 앤 시니컬에도 지분이 있다.


유희경 시인이 혜화에서 보낸 시간만큼 나 또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해외에서 한인 도서관을 만든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아주 많이 힘든 것과 아주 많이 즐거운 건 별개의 문제다. 많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아주 많은 보람을 느꼈고 즐거웠다. 힘들었지만 씩씩하게 내일을 향해 나아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도서관은 나 혼자 만드는 공간이 아니다. 모든 공간의 완성은 사람이다. 사람이 없는 공간은 결국 죽은 공간이 된다. 도서관 초창기에 한 달에 네 명 온 적도 있었다. 망한 건가라고 생각할 때마다 한 가정이 웃으며 들어왔다. 네 가정 모두 한국에 귀국하셨지만, 도서관에 디딤판을 만들어 준 그 가정들에게 감사드린다. 또한 도서관 시즌 1부터 꾸준하게 방문해 주시는 몇 안 되는 교민들에게도 감사드린다. 그들의 소회도 궁금하다. 도서관에는 서점 이야기가 담긴 책이 정말 많다. 가장 남쪽은 책방 무사 이야기, 가장 북쪽은 동두천에 있었던 코너스툴 이야기, 가장 동쪽으로는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 가장 서쪽으로는 전주 에이커 북스토어 이야기가 있다.


수많은 책들 중 결이 같은 책은 하나도 없다. 비슷한 고민을 해도 다르게 풀어나간다. 다른 고민을 해도 목적은 비슷하다. 여전히 해외에서도 클릭 몇 번 하면 책을 주문할 수 있지만, 수많은 책을 90개가 넘는 동네 책방에서 구매한 이유는 바로 이런 씩씩함과 명랑함 때문이다. 정확히는 책을 주는 대상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AI와 대화를 나누는 것과 시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 어떤 걸 선택할 것인가?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부디 나선형 계단에서 다치는 사람이 시인 자신도 그 누구도 아니기를, 동양서림의 오래된 기운을 함께 느끼며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길, 무엇보다 시인이 지치지 않고 즐겁게 서점을 꾸려나가고 지속 가능한 책방이 되길 바란다.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 박연준 시인과 오은 시인 등 많은 시인들의 책에 등장하는 시와 시인들의 보물섬. 그립고 또 그리워지는 책이다.


정말 미안하게도 나의 소중한 독자들은 어린이들이다. 그들의 기억에 남는 서점을 만들고 싶다. “옛날 우리 동네에 괴상한 이름을 가진 서점이 있었는데……”로 시작하는 이야기의 주어가 되고 싶다.

_「어린이, 미래의 풍경」 中에서


언젠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성장해서 한국에 갔을 때 “너 외국에서 이런 책 읽어봤어?”라고 비꼬듯 이야기할 때 “어! 도서관에서 읽어봤는데.”라고 명랑하게 대답하게 되길 바라며 책을 입고시킨다. 가장 좋아하는 말은 “책 소개한 거 보고 대출하는 거예요.”라는 말과 “대박, 이 책도 있네요.”라는 말이다. 태풍이 왔지만 오늘도 명랑하게 문을 열었다. 오늘은 좀 쉬라고 했는데 기어이 자원봉사자 청소년 둘이 와서 위층을 지키고 있다. 지구방위대 후레쉬맨 같은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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