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라는 우주와 책방이라는 은하수(2)

인문은 따뜻한 냉정을 잃지 않는 것


인문은 따뜻한 냉정을 잃지 않는 것.

박주경 작가, 『따뜻한 냉정』(파람북)x책방 무사x제주 풀무질

진보와 보수를 떠나 세상이 시끄럽다.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고, 편이 갈리고, 서로 자기주장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갈등이 또 다른 갈등을 낳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보며 문득 아버지께서 중학생 때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이 시대는 철학이 없는 시대라 나중에 인간다움을 모두 잃어버리게 될 거야.” 당시에는 묻지 마 범죄도 없었다. 언제부터 사이코패스, 조현병 따위가 양형의 이유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시대는 점점 철학을 잃어가고 있고, 쾌락에 취해가고 있다. 인간다움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는 시절이다. 즉, 인문학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시대라는 말이다.

“인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 한석규 배우가 주인공으로 열연했던 ‘WATCHER’라는 드라마에 나왔던 대사다. 이 대사는 한동안 나의 마음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인간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나는 본능을 억제하는 이성과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바닥에서 청탁을 받고 ‘인문 도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책 한 권이 생각났다. 박주경 앵커가 재작년에 출간한 『따뜻한 냉정』이다. 나는 이 책을 잠언처럼 펼쳐 보곤 했다. KBS 뉴스 광장을 진행하는 박주경에 대해 소설가 김훈은 추천사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박주경의 글은 듣기를 포함하는 말하기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모질거나 가파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남에게 들리게 한다. 그 목소리에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의 힘이 실려 있어서 듣는 이의 기쁨을 일깨운다.’

듣기가 부재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인간다움’을 회복시켜 주기에 가장 적합한 책이라 생각했고, 다시 한번 정독을 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1부를 읽는 데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 글을 어렵게 써서 오래 걸린 게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오래 걸렸다. 듣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의 글쓰기는 광대했다. 오늘날 사회에 만연한 문제부터 정의의 왜곡과 외면과 찾아야 하는 권리를 거쳐 가식이 없는 진심이 담길 때만 올라가는 관계의 온도와 말하기 전에, 쓰기 전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생각을 걸러야 한다는 것과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풀어 간다. 단순히 듣기에 의한 글쓰기가 아닌 오랜 시간 타인의 아픔과 사회의 아픔, 무엇보다 가족을 지켜봤기 때문에 더 공감되는 책이다.

박주경 앵커는 모든 문제를 하나로 모아서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리고 이 문제를 직시하라고 권한다. 냉정하게 보고 투표권을 행사하라고, 척하지 말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소문을 듣고 확신하지 말고 신문 기사 1면에 나온 기사라도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올바른 시선으로 보라고 말한다.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아들은 아버지가,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할아버지는 곧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니 후회 없이 떠날 준비를 하라고 외친다.

우리 사회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아픈 환자에게 잘못된 처방과 치료를 제공하는데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그저 의사를 맹목적으로 믿어서 그런 게 아닌지, 의사들은 인간적 양심을 버리고 사람의 생명을 외면하며 자기 이익만 챙겼기에 그런 게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청춘은 나의 10년 전, 20년 전이고 내 아이의 10년 후, 20년 후이기도 하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세상 위에서 청춘이 아파하고 후대가 자라난다. 청춘은 모두의 오늘이다.’(p.33)

‘적어도 노력한 만큼은 위로 올라갈 기회가 주어져야 희망의 불씨라도 살릴 수 있을 텐데, 이제 노력만으로 힘든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절망감을 주는 분야가 교육이다.’(p.43)

요즘 사회에서 ‘이대남’, ‘이대녀’라고 말하며 20대가 느끼는 불공정에 대해 언급한다. ‘십 대남’, ‘십내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있는가? 칭다오에서 매주 일요일 청소년들과 북클럽을 진행하며 그들이 느끼고 있는 ‘분노’와 ‘허무’를 느끼게 되었다. 입시 비리를 저지르고도 책을 내어 베스트셀러가 되는 사회, 벌 받을 사람들이 검찰을 욕하는 시대, 검찰 개혁과 죄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입시 비리와 불공정에 대한 시각은 2016년 촛불을 들던 때와 지금과 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적어도 청소년들의 입에서 “어차피 될 사람들은 따로 있잖아요. 뭐 하려고 노력하는 건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이 나오게 하진 말자.

이 책의 제목이 『따뜻한 냉정』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불공정과 양극화와 전체주의라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지만, 어떠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도 묵묵하게 ‘따뜻함’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기업의 기능이 단순히 돈을 버는 데에만 머문다면 수전노와 다를 바가 없다.”(p.39)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말이다. 내가 닮고 싶은 인물이기도 하고, 유일한 박사의 마인드로 칭다오 경향 도서관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경향 한글학교의 수입원과 운영위원회의 기부금은 그대로 도서관을 통해 교민 사회로 환원된다. 매년 마지막 회계 장부에 임대비를 제외한 금액을 0으로 만드는 것이 도서관의 목표이기도 하다. 사회로 환원된 이익은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온다. 이를 사회적 선순환이라고 한다. 이익(물질, 사회적 명예, 권력)에 집착하면 사회는 망가진다. 악순환이 되고 결국 혈액의 순환이 끊어져 한 나라는 망하게 된다. 세계사가 이를 증명한다.

따뜻한 냉정만 되찾는다면 소외된 사람들이 덜 외롭고, 목에 힘준 사람들은 덜 교만해지는 완벽하진 않더라도 희망이 보이는 사회가 될 것이다. 세상엔 바보 이반이 필요하다.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지키는 사람이 필요하다.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세상은 잘 돌아갈 거야.’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불행의 시작이고, 남의 것을 탐하는 것은 파국의 시작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인간다움의 따뜻함을 잃지 않고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사람은 차갑게 식은 사회의 온도를 조금은 높여줄 것이다.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여의도와 인왕산 밑자락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삶을 살고, 함께 모여 목소리를 내고, 듣기가 기반이 된 대화를 나누면 세상은 사람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사람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고, 함부로 찬물을 끼얹지 못할 것이다. 나라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고 강산이 변해도 여전히 한반도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백성과 국민, 즉 사람이었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메리 올리버 산문집 『휘파람 부는 사람』(마음산책) 중에서)

이 인상적인 문구를 나는 직업병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이렇게 바꿔보고 싶었다.

“이 사회가 언론에게 준 두 가지 의무. 알아내는 능력과 질문하는 용기.”(p.194-5)

“여러분(기자들)은 제게 ‘불편한’ 질문은 자꾸 해야 합니다. 아첨꾼은 언론인의 역할이 아니죠. 그것(불편한 질문과 답변)이 우리 관계의 핵심입니다.”(p.198)

위에 있는 불편한 질문에 대한 말은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말이다. 권력은 국민이 가지고 있는 ‘질문의 힘’을 가장 무서워한다. 그래서 모든 질문을 차단하려고 한다. 국민을 대신하여 질문하는 ‘언론’은 공정성과 중립성과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개혁이라 외칠 게 아니라, 언론 스스로 어떤 권력에게라도 ‘불편한 질문’, 즉 ‘정확한 한방’을 날릴 용기가 필요하다.

부디 이 책을 통해 자신과 사회를 따뜻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따뜻한 사랑’과 ‘냉정하게 질문할 용기’를 되찾길 바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인간다움’을 회복할 때 이 책이 큰 힘이 되길 바란다.

_기고 : '책 뜨락-인문은 따뜻한 냉정을 잃지 않는 것'<인문 매거진 바닥_2021 가을 호>(피서산장)


박주경 작가님의 책을 구매하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울산에 있는 '간절 바당', 도도라는 반려견을 위한 공간이자 제주를 닮은 카페이다. 가 본 적 없고, 만난 적 없는 간절 바당의 대표님은 도서관을 언제나 응원해 주신다. 그곳에 가면 박주경 작가님의 책을 특별한 에디션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인간다움'을 생각하면 제주도에 있는 '책방 무사'가 생각난다. 너른 뒷마당과 요조 작가님의 손길이 가득한 공간들과 진열된 책까지, 책방 무사의 모든 것이 '인간다움'을 향하고 있는 거 같아 좋았다. 환경과 인권에 관심이 많다면 ‘책방 무사’를 꼭 방문하고, 함께 붙어있는 공드리에서 당근 파운드케이크를 꼭 맛 보길 바란다.

수산초등학교 앞 아름상회(책방 무사)
무사라는 이름이 주는 편안함




혜화동에서 오랜 시간 빛을 밝혔던 풀무질은 세대교체를 했고, 은종복 대표님은 사모님과 함께 제주로 내려가셨다. 올해 책방 이전한 걸로 아는데, 제주에 간다면 ‘제주 풀무질’에서 책 한 권 추천받고 대표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계시는 은종복 선생님을 꼭 만나보길 바란다. ‘인간다움’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설명해 주실 것이다.

삶이 시인 것이 좋다

부디 이 사회가 인간다움을 회복하길, 그 중심에 책과 책방과 작가와 독자가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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