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 인생에 당연한 것이 있었던가

"603,374,737명 확진, 6,497,590명 사망."


2022년 8월 29일 기준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환자 및 사망자 현황이다. 지구인 10분의 1 정도가 코로나19에 확진된 적이 있고, 확진자 중 1.1%가 사망했다.


통계 유감이다. 통계는 언제나 무감각하다. 통계를 보며 한 사람의 생이 얼마나 기적 같은지 생각해 봤다. 비혼 주의가 늘어나고 딩크족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갖기 원한다. 아이를 갖기 원한다고 다 가질 수 있는 건가? 아니다. 우리 부부만 해도 4년을 기다렸다. 준서가 태어난 해인 2020년에 304,948명의 아기가 출산 직후 사망했다. 한 아기가 태어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기적인 것이다. 이런 기적 같은 생이 교통사고나 코로나19로 사망하게 되면 숫자 1로 환산된다. 박 아무개라는 말보다 심하지 않은가.


우리는 이렇게 태어난 것조차 당연하지 않다.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 중에도 수많은 위기가 있다. 온갖 질병과 사고의 위험들, 그런 모든 위험들로부터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길을 건너는 것, 먹은 음식을 온전히 잘 소화한 것, 누군가에게는 귤 한 알 먹는 것도 힘든 일이다. 가족이 모두 살아 있는 것, 이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가족이 만나 같이 생활하는 것, 이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아빠와 동네에서 떡볶이 먹는 것조차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소원일 수 있다.


6,497,590명의 사망자를 만든 코로나19가 발생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생각한 것은 '평범함'의 귀함이다.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구절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범사'는 '모든 일', '평범한 일'이라고 나온다. 그러니까 모든 평범한 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인간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쓰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게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숫자로 환산된 수많은 기적 같은 생이 희생하며 주는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이 시절을 곱게 통과하진 못했다. 너무 많은 값을 치렀다. 중국과 한국과 중국에서 버텼던 시간들은 내가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어렵게 태어난 아들의 성장을 540일이나 보지 못했다. 준서에게는 아빠의 부재를 느끼게 했고, 아내에게는 남편의 부재를 느끼게 했으며, 부모님께는 아들의 부재를 느끼게 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풀어갈 이야기는 못난 아비이자 남편이자 불효자식이 되어버린 어느 이방인의 코로나19 연대기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았다면 각자의 시선이 있을 것이다. 이제 그 시선으로 어느 이방인의 이야기를 봐주시길 바란다.

같은 아픔을 겪었다면 아픔의 끝이 만나 조금은 위로가 될 것이라 믿으며, 씁쓸한 통계를 뒤로 하고 생의 이야기를 꺼낸다. 이 글에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평범한 모든 날의 귀함이 묻어있길 바란다.

-2022.08.29.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한국에 마음이 있고 칭다오에 몸이 있는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


어릴 적 2020년은 SF일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