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손목서가에서 인터넷 기사로 본 폐렴 뉴스(2020.01.09.)
1. 어딘가에서 시작된 불행 : 21세기와 폐렴
국내서 ‘중국 폐렴’ 의심환자 첫 확인…36세 중국 여성
중앙일보 입력 2020.01.09 00:04
이에스더 기자
칭다오는 한국과 가깝고 항공편도 많았다. 당일치기로 한국에 다녀오는 사람도 있었고, 사업을 해도 취업비자보다 비즈니스 비자(M)로 체류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즈니스 비자는 3개월 동안 체류할 수 있어서 3개월마다 한 번씩 한국을 다녀와야 했는데, 신간을 수급하기도 편리한 비자였다. 3개월마다 캐리어 하나를 비우고 나가 캐리어에 책을 가득 담고 오는 방식으로 입고시켰다. 작년 여름에 동네 책방의 존재를 알게 된 뒤론 대부분 동네 책방을 다니며 책을 구매하고 있었다.
1월 5일에 한국에 입국해서 창원에 일정이 있어 부산까지 일정에 넣어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창원에 가면 항상 주책방을 들른다. 언제 가도 좋은 주책방에 들렀다가 일정을 소화하고, 부산을 넘어갔다. 동네 책방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있어서 김영하 작가가 진행했던 에 소개된 손목서가로 향했다. 흰여울 문화마을, 영화 변호인 촬영지. 오픈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이미 핫플레이스를 유명해진 곳이었다. 2층 자리가 좋다는 평을 보고, 큐레이션 된 책을 살펴본 뒤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아내와 나란히 앉아 햇살 가득한 공간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배. 다른 무엇이 없어도 ‘평안’을 느꼈다. 아내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시를 적는 동안 잠시 핸드폰을 봤는데, ‘중국 폐렴’이 국내에서도 처음 확인되었다는 뉴스를 봤다.
‘폐렴? 내가 이 단어를 얼마 만에 들어본 거지?’ 속으로 생각하며 기사를 보는데, 다 생소한 단어의 조합이었다. 후베이, 우한, 유행, 원인불명 폐렴. 익숙하지 않은 장소와 단어들의 조합.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에서 유행병이 돌아도 성 자체가 워낙 넓고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나라이니 칭다오와 우한의 거리를 지도에서 보고 ‘이건 또 뭐야?’ 정도 의아한 마음으로 넘겼던 일이다. 중국 폐렴이라니, 별 걸 다 수입한다고 멋쩍게 웃어넘겼고, 언론도 할 일이 참 없다고 생각하며 넘겼던 기사였다. 이후 원인불명의 폐렴은 그 원인이 밝혀지고 살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중국어가 ‘핵산 검사’라는 말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무관심하게 기사를 닫고 아내의 시를 보며 행복하게 웃는 동안, 우한은 지옥이 되고 있었다.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있을 때 지구촌 어딘가에선 전쟁과 국가 부도로 난민이 생기고, 기근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항상 그랬다. 다만, 나와 상관없어서, 내가 있는 곳은 괜찮아서 애써 외면했던 것이다. 21세기에 ‘폐렴’은 어색한 단어였으나,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의 이름은 21세기를 잠식한 단어가 되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로컬의 미래』(남해의 봄날, 2018)를 읽다가 다음 문장을 보고 2020년 1월 무덤덤하게 기사를 보던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지금 누군가 당하고 있는 불행은 미래에 내가 당할 불행일 수 있어.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줘.”
“우리는 오래된 전통문화에서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인간과 그 밖의 다른 모든 존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다시 배우고 있다. 우리는 비로소 우리 안의 세계에 눈을 뜨고 있다. 인간은 거대한 생명의 네트워크를 이루는 일부이다. 그 안에서 생명은 서로 돕고 의지한다. 우리가 속한 그 세계를 더욱 명확히 인식하고 경험할 때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로컬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P.169)
우리는 한 치 앞을 몰랐다, 우리가 원인불명의 폐렴 때문에 훗날 이산가족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2020.01.09. 행복이 익숙했던 시절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