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함정 : 메르스 보단 심하지 않겠지

도서관에서 지난济南으로 보낼 책을 준비하며(2020.01.13.)

경험의 함정 : 메르스 보단 심하지 않겠지 2020.01.13.

-도서관에서 지난济南으로 보낼 책을 준비하며

2020년 1월 신간 예스 24 올해의 책을 대량 입고시켰다


수많은 신간과 함께 칭다오에 다시 복귀했다. 원인불명의 폐렴이라는 찝찝함은 잊어버리고, 지난으로 보낼 책을 정리했다. 책을 정리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책을 보면 떠오르는 상황과 사연들은 일종의 죄책감까지 들게 만든다. 그래서 책을 정리할 때 버리는 것보다 재기증을 선호한다. 월간 경향의 밑그림이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신간이 들어온 만큼 책을 정리하는 방법으로 도서관의 책을 순환시키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산둥성 수도인 지난에 있는 선생님께 도서관과 한글학교를 하실 것을 추천드렸다. 몇 번 찾아뵙기도 했었고, 책도 보내드렸다. 이번에 아예 도서관을 시작하게 응원할 작정으로 직접 책을 가지고 지난에 방문하기로 했다. 칭다오에서 제남까지 거리는 350km, 대략 4시간이 걸린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당일치기로 왕복도 하는데, 지난을 못 가겠나.

북쪽 고속도로가 공사 중이라 남쪽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변수가 하나 생겼는데, 원인불명의 폐렴이란 것이 계속 퍼지고 있다는 뉴스였다. 내가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를 겪은 사람인데, 그깟 폐렴을 무서워할까,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메르스 때도" "메르츠처럼" "메르스까지" 등등.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원인불명의 폐렴에 대해 생각하고 말했다. 우한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이 메르스와 다르다고 알리고 싶었으나 알릴 수 없다. 내가 따스한 겨울의 햇살과 중앙난방으로 데워진 바닥 위에서 포근한 맘으로 책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동안, 누군가는 차가운 바닥에서 소중한 사람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따뜻한 책 한 끼와 차 한잔의 여유"

도서관 시즌 2의 주제였고, 이제 따뜻한 책 한 끼를 대접하기 위해 큐레이션을 적용하려고 했다. 전국에 도서관을 운영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겠다는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토록 뜨거워졌기에 차가운 현실 앞에서도 불씨가 남아있었던 걸 수도 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큐레이션

로빈 M. 호가스와 엠레 소이야르는 『경험의 함정』(정수영 옮김, 사이, 2021)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신의 경험에서 배운 것만큼 강력해 보이는 것도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다고 믿고 그것에 권위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p.33)

지금 많은 사람들은 이 말에 수긍할 것이다. 그러나 2020년 1월, 사람들은 여전히 "라떼'를 좋아했다. 자신의 경험을 맹목적으로 믿지 말 것, 이 또한 원인불명의 폐렴, 지금의 코로나19가 남긴 교훈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차가운 바닥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도 조금은 따뜻한 권리를 누릴 수 있길 빈다.


2020.01.13. 경험과 방심 사이에서,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