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나라 작은방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1. 크리스마스 오전
불가항력적인 고통이 있고
불가항력적인 은혜도 있습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길 원했는데
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따로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까진 저만 음성입니다. 준서와 아내는 독감인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독감 바이러스는 이기지 못하는 것인지, 근데 통증과 증상은 비슷하니 이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준서는 자신만의 속도로 회복하고 있고, 아내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엄마는 정말 위대합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증상이 가서 안심했더니 어젯밤부터 두통과 목 전체로 다시 왔습니다. 이런 것들이 불가항력적인 고통에 해당하는 것이겠지요.
불가항력적인 은혜는 내일 생일의 주인공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 그 자체. 아픈 부모가 되어 아픈 자녀를 지켜보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 은혜와 사랑에 저의 지분은 없습니다. 불가항력적으로 거저 받은 것이니, 거저 주는 삶을 살아야겠지요.
처음으로 방 안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나와 나에게 은혜 주신 분과 곁에 있는 이들에게 집중하게 되는 고요한 크리스마스.
준서야, 산타는 코로나 치료받고 올 거야.
기꺼이 주신 은혜
기꺼이 나누며
기꺼이 사랑하자.
메리 크리스마스.
2. 크리스마스 오후
6,497,590명의 사망자를 만든 코로나19가 발생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생각한 것은 '평범함'의 귀함이다.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구절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범사'는 '모든 일', '평범한 일'이라고 나온다. 그러니까 모든 평범한 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인간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쓰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게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숫자로 환산된 수많은 기적 같은 생이 희생하며 주는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이 시절을 곱게 통과하진 못했다. 너무 많은 값을 치렀다. 중국과 한국과 중국에서 버텼던 시간들은 내가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_칭다오에 사는 이방인, <어느 이방인의 코로나 연대기>(브런치북, 2022)
물론, 지금 이 순간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12월 초에 누가 이런 상황을 예측했겠나요.
일어난 일엔 수긍하고 일어날 일은 대비해야겠지요.
이상하게 내가 아플 때 남도 아프면 위로가 됩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힘이 납니다. 저는 허지웅 작가가 안성기 배우에게 했다는 말을 보고 힘을 냈습니다. “역해도 많이 드시라.”
죽을 간신히 먹은 뒤에 이 말을 보고, 다음날부터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기를 먹으니 힘이 났고, 지금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거 같습니다. 월요일에 음성이 나오면 어린이책 마무리부터 다시 진행하려고 합니다.
2023년은 의식의 흐름대로 살고 싶지만, 토끼처럼 뛰어다니는 해가 돼야겠지요.
고마운 분들이 많았습니다. 다 연락드리고 싶었으나, 올해도 이렇게 인사를 드립니다.
각자의 방법으로 어려움 이겨내고 단단한 일상에서 만나요. 메리 크리스마스.
코로나 확진 5일 차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