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려고 본 게 아니었다. 출근길 2호선, 사람들 사이에 끼어 어쩔 수 없이 시선이 그쪽을 향해 있었다.
내 바로 앞에 서있던 키 큰 남성의 휴대폰이 너무나도 눈에 잘 들어왔다. 안 그래도 키가 큰데 휴대폰을 눈높이에 맞춰 들고 타자를 치고 있었다. 아마 목 보호를 위해서인 것 같다. 그는 두꺼운 헤드폰을 쓰고 짧은 왁스 헤어에 검은 뿔테 안경을 썼다. 또 밝은 색 맨투맨을 입고 있었다.스타일에 신경쓰는 편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는 휴대폰에서 Slack으로 채팅 중이었다. 단체 채팅방이었다. 어떤 상대방이 '오늘 10시 30분에 위클리 미팅인데 레슬리는 왠지 또 지각할 것 같아요'라고 보냈다. 이 사람의 이름이 레슬리인 걸까? 영어 이름을 쓰는 회사인 듯 하다. (레슬리는 내가 지은 가명이다.)
아마 이 남성분은 평소에 지각을 자주 하나보다. 슬랙을 쓰고 서로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걸 보니 높은 확률로 IT 업계. 개발자일까 PM일까? 느낌만 보면 개발자 같다. 요즘 개발자 분들도 잘 꾸미고 다니시니까.
그는 채팅으로 변명을 길게 썼다가 몽땅 지웠다. 조금 다른 어조로 다시 본인의 상황에 대해 쓰다가 다시 전부 지웠다. 이를 몇 번 반복했다. 어떻게 대답할지 무척 고민이 되었나 보다. 결국 '지금 가고 있습니다'라고 짧게 보내고는 유튜브 화면으로 전환했다.
요즘 유튜브 썸네일은 글자가 너무 크다. 그가 화면을 유튜브로 전환하자마자 두 개의 큼직한 썸네일이 보였는데 첫 번째는 "회사 사람들과 얼마나 친해져야 할까?", 두 번째는 "성장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합니다. 월 천만 원의 비밀". 요즘은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보다 나를 잘 안다고 하지 않는가. 아마 그는 회사생활에 대한 상당한 고민이 있을 것이고 새장같은 회사 생활에 약간의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겠다. 또한 성장하고 싶은 욕구, 자기 발전에 대한 욕구, 성공하고 싶은 욕구도 상당할 것 같다. 그야말로 이 시대의 청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