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살의 나, 스물 둘의 나
여권을 찾느라 온 방을 뒤지다가
어릴 적 일기장을 발견했다.
끄적이는 것을 좋아해 일기를 자주 쓰는 편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선생님의 숙제로 일기를 썼다면
중학교 때는 사춘기를 거치며
일기장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았다.
고등학생 때는 제발 나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빌었던 일종의 종교 같은 것이었다.
발가벗겨지는 것 같아 예전 일기장을
들추어보는 일 같은 것은 한 적이 없는데
빛 바랜 표지를 보자 왠지 꼭 읽어보고 싶었다.
어쩜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에
울고 웃을 수 있었는지.
누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서
기분이 어떻게 나빴는지,
언제 무엇을 했는지,
누구를 좋아하는지.
그 날의 순간순간이 전부 담겨 있었다.
순수, 발랄, 성실 어울리지 않는 세 단어가
나에게 모두 있다는 선생님의 코멘트가
눈에 들어온 순간 깨달았다.
다른 사람의 눈에 나는
꽤나 밝은 아이로 비추어 졌었고
그 시절 나는 매 순간을 느끼며 살았다.
또 하나,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
때 묻지 않고 순수했던 그 때처럼,
몇 년이 지나고 읽어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그런 글들을
지금의 나는 쓸 수 있을까.
나의 감정들을 그렇게 정제하지 않고
표현해낼 수 있을까.
지금 나의 모습도
순수, 발랄, 성실이라는 세 단어가
조화를 이루고 있을까.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까.
나에겐 어떤 것들이 남아있을까.
늘 미래의 나를 상상했는데
처음으로 현재의 내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