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까는 어디로 갔을까
열 살이었던 내게 부모님께서는
경제교육의 일환으로 필요 없는 물건을
알뜰시장에 내다 팔도록 하셨다.
내 방 어느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뿌까인형이 내 손을 떠나가던 장면은
아직도 문득문득 튀어나와 가슴 한 켠을 아리게 한다.
엄마께서는 이 인형이 필요하지 않으면
시장에 팔자고 했고 난 흔쾌히 그러겠다 했다.
돈이 생기면 무엇을 할지 들뜨기까지 했다.
그런데 500원을 내민 아저씨가 뿌까의 한 손을 잡고
내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갔을 때
마음 속에 작은 구멍이 생긴 듯 아리기 시작했다.
그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후
시간이 흐를수록 그 구멍은 점점 더 커졌고
이별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뿌까야 가지마 미안해라며
허공에 대고 울먹여 봤자
뿌까는 더 이상 내 곁에 없었다.
그 때부터 였나.
사람도, 물건도 한번 정을 주면 정을 떼지 못하게 되었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요즘은 다시 뿌까를 놓쳐버린 그 열살 꼬마처럼
내 일상 속 소중함을 자꾸만 까먹는 것 같다.
없어지고 나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내 곁에 있던 사람이,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깨닫는 중이다.
하고 싶은 것은 많고, 해야 할 것들은 더 많고.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한번 나를 몰아치기 시작하니
점점 더 많이, 점점 더 빨리
나를 몰아치게 되었다.
좋아서 시작한 것들이
내 발목을 잡고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힘들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추면 큰 일이 날 것 같아서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벌여 놓은 일들을 내가 감당할 수 없어
눈물이 툭툭 떨어지는데
울면서도 꾸역꾸역 무언가를 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 질려버렸다.
나 지금 뭐하고 있는 건데.
쉴 시간이 없을 때가 정작 쉬어야 할 때라고 했나.
내 일상 속의 할 일들, 사람들.
모두 제쳐 두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그리던 이상 속으로 들어가고 보니
결국 나의 이상도 누군가의 일상이었다.
그제서야 나의 일상 속에 발을 디뎌준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이었는지,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었는지,
방 한 구석에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물건들에
내가 얼마나 많은 애정을 쏟았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바빠서, 귀찮아서, 까먹어서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들로
반짝이는 순간들을 뿌옇게 덮어버린 것은 나였다.
그렇게 덮어버리고는
저 멀리 있는 다른 누군가의 별이 갖고 싶다고
징징댔던 것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나는 여전히 나에게 뭐가 소중한지 모르고 있다.
나는 여전히 겁이 많고 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