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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문디 Mar 14. 2022

무섭고 무섭고 무섭다

나 혼자 6개월을 살아야 한다니

매 순간 멈추어 느꼈던 

24박 27일 간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와 

수능 끝난 고3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놀았다. 

친구들을 만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달력을 봤는데 

출국 날짜가 2주 뒤다.


혼자 당일치기 여행도 안해봤는데.

아니 사실 혼자 뭘 해본 기억이 별로 없는데

2주 후면 나 혼자 떠나는 거다.


나 혼자 비행기를 타고, 경유하고, 

내가 6개월 간 살 집을 알아보아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혼자 가는 것이 무섭지 않냐고,

걱정되지 않냐고 묻는 말에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나도 이제 혼자서

잘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아는 사람 없이 혼자가는 것도

영어가 많이 늘 거라며 좋아했다.


그런데 막상 떠날 때가 됐다는 것이 느껴지니

모든 것이 두려웠다.

생활 영어도 완벽하지 않은 내가

친구를 사귀고, 학교 생활을 할 생각을 하니

정말 까마득했다. 

통신사, 계좌, 아르바이트, 집, 영어 강의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었다.

멜번에 제대로 도착이나 할 수 있을지, 

한 동안 집을 구하지 못해

백패커를 전전하는 것은 아닐지 하는 걱정에

어제, 그러니까 출국 하루 전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짐을 싸다 울컥, 

잘 다녀오라는 친구들의 연락에 또 울컥.

그래도 엄마 앞에선 울지 말자고 다짐해놓고

출국하려 줄 선 사람들 틈에서

엄마의 손을 잡고 있다가

엄마를 보지 못하고 또 울어버렸다. 

나는 혼자가 되는 것이 너무 무서웠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몇 달동안이나

보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누군가에게 고작일 수 있는 시간이

엄마 품을 처음으로 떠나보는 내게는

영원에 가까운 시간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내 손을 놓고 등을 돌리셨고

나는 엄마의 손을 놓고 혼자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홍콩까지는 4시간이 채 안되는 시간.

이륙한지 얼마 안되어 나온 기내식을 먹다가

내 옆의 사이 좋은 부녀를 보고

또 가족들이 생각나 울어버렸다. 

울면서도 꾸역꾸역 다 먹으며 

걱정하는 것보다 나는 더 잘 해낼 거라고, 

기대하는 것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 될거라고.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주문을 걸었다. 


생애 처음으로 혼자하는 여행, 

혼자 가는 해외, 혼자만의 시간.

레이오버했던 홍콩에서 나는

데이터 없이도 길을 잘 찾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재미있게 즐겼다. 

생각보다 외롭지 않았고

혼자가 된 내 모습을 꽤나 멋있었다. 

왠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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