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벤트 개최
음악 이벤트 만들기. 한국에서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과제였기에 처음엔 막연히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강의 내용도 사실은 쉬웠기에 나는 내가 즐기며 공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이 과목이 한 학기 동안 나를 가장 괴롭혔다.
이벤트 콘셉트 정하기, 후원자 구하기, 장소 대관, 밴드 섭외, 이벤트 홍보 등 하나의 이벤트를 만들기 위한 모든 과정에 우리가 직접 참여하여 결국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이 이 과제의 내용이자 한 학기 동안 해야 할 일이었다. 재미있어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곳에 혼자 왔다. 그 말은 이곳 지리도 제대로 모를뿐더러 아는 밴드, 후원자는 커녕 이 친구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것도 벅차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나는 의견 제시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튜토리얼 시간마다 모여 팀 별로 이 이벤트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 시간이 내게는 가장 고역이었다. 내가 뭘 하면 될까라고 매번 묻기는 했지만 이들도,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이 친구들은 참 사람 좋은 미소로 음.. 괜찮아!라고 대답해주었다.
정말 힘들었다. 팀 활동에서 그냥 묻어가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에 소름이 끼쳤고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에 매주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다른 건 다 적응을 해도 이 기분만은 몇 달이 지나도록 적응이 되지 않았다.
비유를 하자면 이런 거다. 정말 안 친한 친구들과 매주 한 번씩 밥을 먹는데 나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다 친하다. 밥을 먹지 않으면 안 되니까 꾸역꾸역 먹고는 있는데 이 친구들이 하는 대화에 나는 낄 수가 없다. 내가 끼면 어색한 침묵과 정적이 흐른다. 사실 내가 빠지는 것이 모두를 위한 일일 텐데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그냥 밥만 먹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몇 달을 그렇게 해야 한다. 뭐 그런 기분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차라리 나를 싫어하면 마음이 편한데 나를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 틈에서, 그들과 섞이지 못한 채 이 자리를 지켜야 하는 기분. 그래, 그런 기분이었다.
드디어 이벤트를 하는 날. 길치인 내가 처음 가보는 장소에 혼자 가야 했다. 집에서 몇 번을 환승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그 장소로, 밤에, 혼자. 한국에서도 밤에 혼자 걷는 건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낯선 곳에서 혼자 걷고 있으니 무서웠다. 세레나 언니는 걱정을 가득 담아 조심하라고 말해주셨다. 현지인이 조심하라는 건 정말 위험하다는 뜻이 아닐까, 무섭다.
아니 엄마와 함께 걷던 밤은 무섭지 않았다. 내가 지금 무서운 이유는 이 낯선 곳에 나 혼자 있다는 것, 내가 그곳에 간다 해도 아무도 나를 반겨줄 사람이 없다는 것,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그 괴로운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수많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아무렇지 않게 악수를 청하고 나를 소개하기에 나는 너무나 겁이 많았다. 그래도 하늘에 별이 반짝이고 있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대학생들이 섭외한 4개의 락밴드가 약 3시간 정도 공연을 하는 이벤트였다. 그런데 이 비좁은 공간에 내 또래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심지어 교수님까지 함께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이 영화 같은 상황 속에서 나는 주인공도, 조연도 아닌 관람자에 불과했지만 사실 아예 이렇게 마음을 놓아버리니 편한 것 같기도 했다. 한 시간 반 정도 뻘쭘하기 서 있었나, 카운터를 보던 친구가 자기도 구경하고 싶으니 자리 좀 맡아 달라고 했다. 일 시켜 주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조금 앉아 있으니 한 팀원이 와서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혹시 필요하면 자리를 지키겠다고 먼저 와서 내게 말했다. 아, 나도 그랬어야 했다. 그렇게라도 했어야 했다. 그럼 마음이 덜 불편했을 텐데. 고마웠지만 나는 계속 내 자리를 지켰다.
공연 종료 예정 시간은 밤 11시 반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있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우리 집까지는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게다가 이곳까지 오던 중 길을 잃어 이미 충분히 겁을 먹은 상태였다. 결국 10시 반에 나와 우버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혼자 택시를 타본 적이 없는데. 학교 가는 교통비 아끼겠다고 매일 3킬로씩 걸어 다니던 나였는데, 택시를 타니 참 편하다. 이 편안함에 익숙해질까 봐, 그래서 더 게을러질까 봐 참 여러모로 무서운 밤이다.
집으로 오던 중 세레나 언니로부터 역으로 데리러 갈까?라는 메시지가 왔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이 고역스러운 시간도 거의 끝나간다는 것도 그제야 실감이 났다. 한 학기 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