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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문디 Apr 12. 2022

한 달 반

한국을 떠나 온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한국을 떠나 온 지 한 달 반이 지난 2017년 4월 2일, 새벽 3시를 가리키던 시곗바늘이 한 칸 움직여 새벽 2시로 되돌아갔고 Daylight Saving Time이 끝났다. 유독 길었던 여름의 끝에 가을이 성큼 다가왔고 한국과는 1시간 더 가까워졌다. 


영어 실력은 그대로이고 친구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이지만 낯설었던 이곳 생활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집도 못 구한 채로 혼자 떠나와서는 입맛이 없어 제대로 밥을 먹지도 않았던 처음의 나와는 달리 이제는 세 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한국에서 보다 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엄마가 해주시는 밥이나 먹던 철없는 스물둘 어른이는 이제 할 줄 아는 음식이 몇 가지 되어 친구들에게 요리 솜씨를 뽐낸다.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소심이는 이제 이력서를 들고 눈여겨본 가게에 들어가 날 써보지 않을래?라고 말하거나 과제를 위해 친하지 않은 학우에게 본인 사진을 부탁하는 것쯤은 잘한다. 아직도 구글맵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 몇 번 가봤던 장소들은 눈에 익어 지도 없이도 잘 찾아다닌다. 비싼 외식비에 나만의 단골 가게는 생기지 않았지만 마트 어디에 내가 사려는 물품이 비치되어 있는지 안다.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은 그 정도의 변화를 주기에 충분했다. 


인스타그램에 친구가 올린 한국의 아파트 사진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파트 벽면에 쓰여 있는 한국어가, 원색이 아닌 흰색으로 덮인, 네모 반듯한 건물 모양이 낯설었다. 한국은 꽃봉오리가 맺혔다는데 이곳은 요 며칠 구름이 두껍게 끼어 햇빛을 가리는 중이었고 푸르던 하늘은 회색 빛깔로 변해버렸다. 반팔을 입어도 더웠던 지난주와는 달리 긴 팔, 긴 바지에 두터운 점퍼까지 껴입었는데도 쌀쌀했다. 알게 모르게 서서히 달라져가던 중 서머타임의 해제로 시차는 한 시간이 줄었다. 이렇게라도 가까워지니 참 좋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시간에 눈을 뜨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 설렌다. 더는 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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