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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문디 Apr 11. 2022

응답하라 1997, 12화

나는 어른이 되기 싫었다

왜 그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 싫었는지. 12월 생일인 나는 주민등록증을 미루고 미루다 12월 30일에 발급 신청을 했고 한 달이 지나서야 찾으러 갔었다. 커피를 마시면 어른이 된 것 같아 카페에 가면 늘 커피가 아닌 다른 음료를 선택했고, 어른이 될 바에 차라리 고 3으로 남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했었다. 


"십 대가 질풍노도의 시기인 건 아직 정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말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그 답을 찾아 이리 쿵, 저리 쿵. 숱한 시행착오만을 반복하는 시기. 그리고 마지막 순간, 기적적으로 이 모든 것의 정답을 알아차렸을 때 이미 우린 성인이 되어 크고 작은 이별들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 해 겨울, 세상은 온통 헤어짐 투성이었다." 응답하라 1997, 12화 중 성시원의 독백이다. 세상은 온통 헤어짐 투성이었다는 그 말에 어쩌면 내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누구와도, 어떤 것과도 이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적당히 거리를 두는 법을 배워가며 헤어짐에 익숙해진다는 뜻이다. 어릴 적 친했던 친구가 전학을 간다는 말에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했던 나는 더 이상 스치는 인연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이별하게 될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아린 지금과 달리 정말 어른이 된다면 그런 헤어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은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작은 이별에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어버릴 수 있는, 사소한 상처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쓰리게 느끼는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신은 인간에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준다고 했나. 그래서인지 아직은 그 누구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내 선택 중 어떤 것이 옳았는지 몰라도 좋다. 이리 쿵, 저리 쿵 부딪히다 온 몸에 멍이 들어도 좋다. 이기적이라고, 철이 없다고 말해도 좋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늘 그랬듯 나는 지금 이 순간이, 내 나이에 보내는 이 시간들이 가장 좋다. 스물둘, 만으로는 스물의 나이. 호기심에 아주 잠깐 떠나 오긴 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내 곁에 머물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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