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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문디 Apr 10. 2022

과제 2

그룹 리포트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가 뭘 써야 하는지, 그동안 무엇을 공부했는지.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한참을 멍하니 노트북 화면만 쳐다보았다. 기본 공식도 모르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답답했다. 그룹 리포트였고 500 단어나 써야 했다. 경영학 이론을 배워본 적 없는 내게 너무한 거 아닌가요?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시간표를 받고도 정정 요청을 하지 않은 것은 나였기에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프로그램을 다시 열어보았다. 1주일에 한 번씩 수요를 예측하여 우리 Zen Hotel의 숙박비를 설정했고, 시설을 정비했으며, 매점, 투어 등 서비스를 추가했다. 월요일 저녁 교수님은 프로그램을 돌려 몇 명이 방문했고 수익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등 지표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셨다. 그러면 우리는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달에는 가격을 어떻게 설정할지, 어떤 것을 추가할지, 마케팅 계획은 어떻게 세울지 토의를 했다. 


솔직히 거의 관찰자 입장이었다. 독일에서 온 교환학생과 홍콩 유학생 언니가 굉장히 열정적이었고 둘이서 거의 우리 팀을 이끌어갔다. 나는 이 둘이 하는 말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혹시나 내 의견을 물을까 늘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나의 영어가 완전하지 않은 것을 이해해주어서 참 고마웠다. 그런 사람들에게 난 끝까지 짐이었다. 그룹 리포트는 정말 잘 쓰고 싶었는데, 내가 맡은 부분만큼은 잘 해내고 싶었는데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아 너무 속상했다. 


마지막 과제를 앞두고 공강이었던 날, 조원들을 만나러 저녁에 학교에 갔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내가 쓴 부분은 엉망진창이었다. 용어도 처음 들어봤고 나는 경영이 아닌 관광 전공자이고, 영어도 못하고. 이론 자체가 일단 이해가 되지 않으니 해괴망측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팀원들의 대처 능력에 정말 놀랐다. 


"지원, 물론 네가 잘 쓰긴 했지만 네가 맡은 부분은 이러이러한 내용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이건 이렇게 수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괜찮다면 내가 도와주고 싶은데 혹시 도움이 필요하니? 그래프를 내가 만들어줘도 될까? 필요하다면 이것에 관한 자료를 보내줄게. 이걸 참고해서 작성해볼래?"


물론 순간 "네가 좀 해줘. 나 하나도 모르겠어." 라며 징징대고 싶긴 했지만 정말 나를 팀원으로 인정하고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존중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는 잘 못하니까) 내가 대신해줄게.라는 말보다 이런 도움이 훨씬 고맙고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봐 준다는 것이 느껴졌다. 


보내준 자료를 읽어보고 그래프를 만들고 긴가민가하며 겨우 분량을 채워 다시 보냈다. 그리고 조원들은 내게 다시 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이 경험이 너에게 스트레스가 되기보다는 좋은 공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해주었다. 내 글을 읽어보고는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대로 잘 썼다고 격려하며 작은 문법 오류들을 수정해주고 싶은데 기분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끝까지 나를 배려해주었다. 


상대를 배려하는 법을 배웠다. 무조건적으로 돕기만 하는 것은 오히려 부담을 주는 것일 수 있다. 기본적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돕되, 그 사람의 능력치를 최대로 끌어주는 것, 그것이 다른 누군가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방법이다. 팀 프로젝트 대처는 이렇게 하는 것이었다. 팀의 구멍이었던 내가 이 그룹 과제에 기여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준 우리 조원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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