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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몬스 Apr 26. 2022

여기, 사람 있어요.

7년 전과 똑같은 냉동인간이요. 아니, 외모 말고요.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른다. 7년 전 나와 지금의 내가 나이만 먹었을 뿐, 같은 사람이라는 게. 어릴 때는 잠재력이라도 있지, 30대인 나는,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니다. 사회에서도 내게 원하는 역량이 있고, 그에 따른 커리어를 꾸려나가야 할 때, 나는 멈춰버렸다. 허리디스크의 재공격이었다. 허리디스크의 예상치 못한 습격은, 사회에 이제 막 진입해서 더 가열차게 일해야 할 때, 더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되도록 내 ‘행동 설계도’를 바꿔버렸다.


나는 게으른 나를 용서했다. 과거의 나였으면 지금의 나의 모습을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다. 항상 무엇인가를 해야 하고, 발전하고 싶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그런 열정적인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가만히 있는 것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것처럼 하향화되는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현재를 산다. 지금 무엇인가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꿈이 없어도, 현재에 만족하며 이렇게라도 숨 쉬고 살 수 있음에 감사한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3개월 동안 누워있던 최악의 내 모습을 기억한다. 천장은 하얬다. 내 래도 그렇게 하얗게 백지가 되어버린것 같았다. 쾌변의 삶을 살던 내가 변비에 걸렸다.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화장실 가기가 겁났다. 누워서 밥을 먹었다. 체하는 느낌이 싫어서 다이어트 도시락 하나로 하루를 났다. 3개월 만에 8kg이 빠졌다. (원래는 도미노 포테이토피자 라지 한판을 혼자 먹던 사람이었다.) 서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서지를 못했다, 돌이 지난지 30년도 넘었는데. 단지 걷기 위해서 한 달 동안 일어나고 서기를 반복했던 나를 기억한다. 그 최악의 기분을 기억한다. 땅굴 속 두더지처럼 지하의 끝이 어딘지 모르고 바닥을 긁고 있었던 나였기에, 땅에 발을 딛고 서서 숨을 쉬고 몸으로 바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꿈을 버리고, 미래를 버리고, 과거의 나 자신을 버려야 가능했지만.


그러나 가끔 생각한다. 이제 돌아갈 준비도 슬슬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고. 허리의 아픔으로 인한 게으름은 용서했으나, 그 외 다른 쪽으로 용서를 한 것은 아닌데. 가끔씩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를 보내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이제 수영장에 갔다 왔다는 것만으로 스스로 칭찬해주기에는 예전보다 좋아진 상태인데, 아직도 그때처럼, 허리가 극강으로 아팠을 때처럼,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아무것도 안 하기로 설계된 지금의 몸에게 이제는 ‘너도 이제 뭔가를 해야 할 때’라고 마음속으로 이야기한다. 시간이 가는 게 무섭다. 7년 동안 나에게 뭐를 했냐고 물어보면 머릿속이 까마득하다.


이 글은 추억하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니다. 과거를 위해 흘릴 눈물도 없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지난 7년이, 허리가 안 아팠다면, 지금의 나와 많이 달랐을까, 하고. 예전에는 허리만 아프지 않으면 과거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힘들다고 은연중에 결론을 내버렸다. 지금의 나는, 7년 동안 켜켜이 쌓아온 나다. MBTI까지 변할 정도로 아픈 동안 다른 성향의 나로 살았던 거지만, 그 다른 성향에서도 장점과 취향을 발견했다. 그게 또 썩 싫지만은 않다(예전에는 그것도 싫었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 이 모든 것을 좋게 받아들일 때가 온 것을 보면, 나는 지금 허리 치료의 중반부를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아프지만, 많이 아물었다. 하지만 아직도 어딘가에서 아파서 서럽게 울고 있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 길을 가다가 아파서 벤치에 누워버리는 사람이, 병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 방사통이 심해 다리를 자르고 싶은 사람 있을 것이다. 내가 감히 그분들에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얘기하지 못하겠다. 그 아픔은, 그 누가 있어준다고 해도, 온전히 나만의 아픔이다. ‘이제 내 인생 어떡하지’라는 막다른 골목에 있는 좌절감 속에 살고 있을 것이다. 나아진다는 생각 조차 하지 못할 것이고, 그 길이 아주 까마득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전히 나도 통증과 함께하고 있으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슬픔이 울대를 치고 있다. 내가 노트북에 끄적였던 글을 공개하기로 한 이유는 그저, 여기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딘가에 '그 사람도 그랬구나'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를 것이다. 나는 그랬다. 나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지 못할 수도 있다. 창피하지만, 그저, 한 사람에게라도 손을 내밀고 싶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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