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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몬스 May 13. 2022

제 꿈밖에 모르는 되바라진 X

시속 28km로 추락하고 있었다.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다.


바람 부는 날 길거리에서 친구들과 마시는 술, 산뜻한 미래를 함께할 친구, 더러운 세상도 같이 발차기하며 걸어줄 친구, 신선한 원두로 내린 커피 향기를 마시며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시간, 극장에서 보는 영감 대잔치 영화, 12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멍 때리며 타는 인터넷 파도, 잡념이 가득할 때 3시간이고 4시간이고 걷는 천변, 된장찌개 배불리 먹고 나서 먹는 깍둑썰기 된 락앤락 통 안에 수박, 경희대 도서관 가는 나무가 가득한 길. 켜켜이 쌓여 나를 이루고 있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나는 나일까. 의식은 그대로 있는 채로, 세상만 변화했다면, 아니 몸이 변화하여 이전의 나와 이별해야 한다면 현재의 나는 나일까. 나라고 칭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이번 생은 망했어.

한 번은 이런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번 생은 진짜 망했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지.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는 왜 내 몸 하나를 소중히 하지 못하였을까. 생각해보면 억울하게도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9살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아등바등 살았다. 그때는 몸을 챙기기보다 어떻게든 살아나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2교대 부품공장, 음식점 등 다양한 알바를 거치고 새로운 학교를 통과하여 결국 내가 그리던 비스무리한 직업을 가졌다. 아니, 가졌었다, 거의.


난 되바라졌었다. 다시 대학에 갔을 때, 부모님은 많이 좋아하셨다. 그럴 때 나는 부모님께 단호하고 다정하게 말씀드렸다. “좋아하실 것 없어요. 그냥 제가 가는 꿈의 길과 부모님이 바라는 나의 모습의 길과 우연히 겹쳤던 것뿐이에요. 전 다시 부모님이 원하는 길로 가지 못할 수도 있어요. 저는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살지 않을 거예요. 제가 살고 싶은 대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 거예요.”라고. 초, 중, 고 졸업식에 온 적 없는 부모님이 대학교 졸업식에 오셨다. 꽃다발, 학사모, 가족사진. 내 사전에 없었던 평범한 졸업식 풍경이었다. 아빠는 나에게 "넌 무슨 상같은거 안 받냐?"라고 물었고, 나는 아빠가 사주는 밥상을 받을 거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옆에서 사진을 찍던 아저씨가 멋진 아가씨라고 말해준 덕분인지 아빠 조금 으쓱했다. 졸업식 후 나는 진짜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육회와 돼지갈비와 냉면으로 차린 한상. 


내게 무안한 질문을 할지라도 웃으며 잽을 날리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제 꿈밖에 모르는 나쁜 년이었다. 그 대가였을까. 내가 생각한 목표의 순간에 거의 다 닿을 중요한 시기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삶의 혹독함 뿐이었다. 하나, 실명할 뻔했던 렌즈삽입술 수술, 둘, 1500만 원을 날린 월세 보증금 사기 사건. 그리고 셋, 아빠가 아프다는 소식. 수술 후  세균 감염으로 한쪽 눈앞이 회색으로 보 재수술을 했는데 그때 처방받은 약의 부작용으로 안압이 진정되지 않아 눈알이 터질 것 같았다. 6개월 동안 빛을 보지 못하고 물체가 3개로 보여도 버텼다. 월세로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며 새로운 재산권 행사권자가 전기와 도시가스를 끊고 밤 10시에 와서 문을 쾅쾅 두드려도 이 악물고 버텼다. 허아빠가 아프다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이제껏 아빠와 죽음을 같은 선상에 둔 적은 없었다. 병원에서 아빠 이름을 부르며 보호자분 함께 들어오라는 말을 듣는 순간, 꿈을 가진 독립적 개체에서 김씨네 장녀로 변했다. 평생 아빠가 내 보호자인줄 알았는데 내가 아빠의 보호자가 되다니.

아빠는 만날 때마다 “너는 지금도 (멘토링) 선생 하면서 왜 진짜 선생은 안되려는 거냐.”를 알파고처럼 반복했다. 이 말만 녹음된 알파고 같았다.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화제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그 이야기로 귀결되고야 마는 신기한 알파고였다. 알파고가 아프다. 대장암이다. 꿈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나에게 힘을 주긴커녕 핀잔만 주던 아빠에게,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엄마와 동생에게, 꿈이라는 방패로 행했던 내 행동처음으로 미안했다.


원투쓰리 펀치를 맞고 쓰러졌다. 설상가상으로 다시 허리디스크 통증이 재발하기 시작다. 어떻게 그렇게 삶은 지독한 건지, 나는 왜 당하고만 살고 있는 건지, 세상에 제대로 펀치 한번 날리지도 못하고 녹다운되어버렸다. H.O.T.의 ‘위 아 더 퓨처’를 들으며 어린 시절 객기를 충전하던 똘기 가득했던 나는 기어이 모든 것을 스톱하기에 이른다.



■ 중지 ll 모든 것의 일시정지


내 삶은 정비소에 들어간다. 안정보다 변화가 좋았던 내가 ‘이딴 변화라면 거부하겠어. 이제 안정의 길로 가겠어.’라고 충동적으로 결심한다. 더불어 내면의 목소리를 듣느라 외면했던 몸의 목소리의 볼륨을 높인다. 끓는 솥에 개구리였을까. 서서히 뜨거워져서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튀어나가지 않는다는 개구리*처럼 서서히 내 허리디스크가 망가져 버린 건 줄도 모르고 살았던 걸까. 열심히 회사를 그만두고, 열심히 병원을 다니고, 열심히 허리 관련 책을 읽고, 열심히 쉬다. 예전에 한번 겪어본 허리디스크 통증이었기에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했다. 통증이 아예 사라지는 데는 오래 걸렸지만 극심한 통증은 6개월 이후부터 괜찮아졌었으니까. 웬걸, 이번엔 6개월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차도가 없다. 역시 운동인 건가 싶어 인생 최초로 헬스장이라는 곳에 가서 소도구 필라테스도 시작했다. 허리에 좋다고 하니까 믿고 해 본다. 그런데 이상하게 점점 더 허리가 아프다. 예전에는 허리만 아팠다면, 이제는 골반도 아프고 목은 숙이지를 못할 정도가 되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다리다. 자꾸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고 전기가 흐르는 것 같고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았다. 이건 내가 22살에 겪었던 허리디스크 통증의 양상이 아니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기야 걷는 게 불편해졌다. 땅에 닿으면 골반이고, 허리고, 다리고, 이런저런 곳이 다 아팠다. 나는 온갖 정보를 습득했고, 내가 왜 이렇게 된 건지 이유를 찾으려고 애썼다. 지나가는 개미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판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허리는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물리치료하면 약간 좋아지는 느낌이라도 있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이건 내가 쉬거나 운을 한다고 좋아질 게 아니라고 판단했 건너 건너 알아낸 좋다는 병원을 찾아가 MRI를 찍었다. 역시나 4-5번 디스크가 흐르고 있었다.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하면 좋아질 수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 다리 통증은 신경이 눌려서 그런 것이니, 신경의 염증을 치료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희망이 보였다. 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날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비가 부담되긴 했지만 아프지 않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고생도 이제 끝이다! 현대의학과 인류 발전에 만세를 부르며 집으로 향했다.

 



* 이 실험은 최근에 오클라호마 대학의 빅터 허치슨(Victor H. Hutchison) 박사의 연구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물이 데워지는 속도가 분당 1.1도보다 빠르면 어떤 개구리도 물에서 바로 뛰쳐나온다는 거죠. 실제로 서서히 온도가 변화할 때 뛰쳐나오지 않고 죽는다고 주장했던 하인즈만(Heinzmann)은 분당 0.2도씩 물 온도를 높였습니다. 즉, 가열 속도의 차이가 달라지면 개구리의 생사 여부도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아직 논쟁 중인 실험이지만, 천천히 변하면 서서히 죽을 가능성이 높은 건 여전히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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