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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몬스 May 20. 2022

피청구인 허리디스크를 탄핵한다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나의 허리디스크와 함께.


수술 날, TV에서는 탄핵심판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피청구인 박근혜를 탄핵한다."헌법재판관장의  웅성거리던 간호사와 환자들을 뒤로하고 수술대로 향했다. 바퀴가 달린 침대에 누워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술실로 이동하는, 정신은 이미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늘처럼 아득해졌다.  변은 하얬다. 천장도, 전등도, 벽도, 내 머릿속도.  수술실의 차가운 공기가 손등에 앉았다. 록색 수술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보이자 조금 실감이 났다. 의사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줬 무엇보다 약물이 들어가면 아플 테니 참기 힘들면 손을 들라고 일러주다. 의사의 말투는 마치 이 수술이 치과에서 이뤄지는 신경치료 정도의 의료행위로 보이기 충분했다. 그 나에게 권한 수술이란, 부작용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도무지 위험할리가 없는, 그저 이름만 '수술'로 명기된, 환자를 위한 명약이었다.  


하반신 쪽만 마취해서 의식이 있는 채로 리뼈에 카테터를 삽입하고 그곳으로 약물을 주입했다. 하필 생리 중이라 창피했는데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약물이 들어가자 다리가 발작다. 새로운 종류의 고통이었다. 다리 부근에 존재하는 온갖 내 소유의 세포들이 항의를 하는 것 같았다. 약물은 세포에게 적군이었다. "윽." 참으려고 했지만 입에서 소리 새어 나왔다. 후. 심호흡을 고 주먹을 꽉 쥐어보았다. 아직 한쪽 다리가 남았다. 역시나 세포들은 다시 반란을 일으다. 적군 싸우는 것처럼 아우성 댔고 전쟁터가 되었던 내 다리 포탄이 떨어진 것처럼 흔들렸다. 짧은 수술이었다. 수술을 하고 처럼 누워있는데 의사가 와서 발가락을 톡톡 건드렸다. 마비가 되진 않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고 "수술 아주 잘됐다"고 말했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빛이 내리는 듯했다. 의사는 신이그의 말은 천국으로 가는 티켓이까. 병원에서 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물리치료실에 가서 전기치료, 견인치료 등을 받았다. 비급여 치료가 포함되어 있어서 한번 할 때마다 10만 원이 드는 고급진 치료였다. 낫기만 한다면 아깝지 않은 돈이었다. 간호사에게서 주의사항이 적힌 안내지와 마약성 패치 진통제와 약들을 받으로 왔다. 옷을 벗고 침대에 눕자 기분 좋은 피곤함이 밀려들었다.



*


수술을 하면 다리 칼로 긁는  같은 하지 방사통이 바로 '뿅'하고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그것을 기대하고 수술을 했지만 통증이 사라지는 마법 따위는 없었다. 대신 내 몸이 종잇장이 되어버리는 마법에 걸렸다. 분명히 병원에서는 수술이 잘됐다고 했는데, 내 몸은 그전보다 더 안 좋아졌다. 상가상으로 없어지길 바랐던 방사통이 더 심해졌다. 신경이 지나가는 길에 바늘, 칼, 전기, 파스, 벌레같은 고문 기계가 살고 있었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겁고, 종아리는 칼로 긁는 것 같고, 발가락과 발바닥은 바늘로 찌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때는 파스처럼 화한 느낌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 같았고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사통은 기본이고 (마약성 진통제때문인지) 환청이 들리고 헛것이 보이는 옵션이 추가됐다.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평소에 모로 누워 벽을 보고 자는 게 습관이라 정면으로 자는 게 익숙지 않아 잠이 오지 않았다. 한자세로 있으면 통증이 심해 30분마다 깨서 왼쪽으로 누웠다, 른쪽으로 누웠다, 정면을 보고 누웠다, 자세를 변경하며 잤다. 아니, 깼다. 자세를 변경하다가 칼로 긋는 찌릿한 방사통이 맞물리면 고통에 신경이 깨어나 그날은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특히 새벽 4시는 방사통이 파티를 여는 시간이었다. 일이 고문이었다. 허리는 100kg 돌을 둔 것 같이 묵직했다. 두려움 프트럭 날 치고 갔다. 자다가 눈을 떴는데 눈앞이 하얘지다가 갑자기 할머니가 나타나 나를 부르셨다. 돌아가신 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할머니였다. '이런 게 죽는 건가' 생각하며 따라가다가 깼다. 어느 날은 눈을 떴는데 앞이 보이지 않고 빨강, 초록의 빛들이 내 눈에 광선처럼 비쳤다. 생시 같은 꿈이었다. 같은 생시일지도 모르겠다. 며칠을 식은땀을 흘리며 공포스러운 밤을 . 밤은 환했고 낮은 까맸다. 피곤함이 통증과 싸워 이겼을 때 비로소 잠에 들 수 있었다. 자고 있는데 자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악몽이 TV처럼 재생됐누워서 쉬고 있는데도 피곤했다. 1주가 지나고, 3주가 지나도, 여전히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았고, 여전히 허리는 종이처럼 흐물거려서 서있기가 힘들었다. 마의 인내천(川)이 마를 날이 없었다. 여전히 화장실에 가는 것도 고역이었다. 허리에 힘을 주지 못해 오줌이 나오다 말다 했다. 을 싸는데도 허리가 쓰인다는 것을 알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 거쯤은 인체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두고 싶었는데. 한 군데 고장났을 뿐인데 이런저런 신체 활동의 메커니즘을 굳이 알게 되었다. 


왜.

.....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수술하면 괜찮아진다며,

왜 난 더 아파진 걸까.


희망이 스치고 사라졌다. 절뚝이던 인생도 결국 끝난 것 같았다. '난 이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누워서 고개 돌리면 척추가 틀대 TV도 못 보는구나.' 텔레비전은 보는 게 아니라 듣는 것이 되었다. 소리만으로는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운 관찰 예능프로그램 천지인 텔레비전은 전자파 나오는 까만 쓰레기에 불과했다. 천장의 하얀 벽지 속 반짝이는 점을 하늘의 별처럼 응시하눈을 깜박이다 하루가 갔다. 할 수 있는 일은 누워서 팟빵 듣기와 누워서 생각하기 뿐이었다. 생각...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란 걸 살펴볼수록 절망스러웠다. 나는 '살아있음을 느끼다' '존재 가치를 증명하다' '지금 하는 일이 내 천직이라고 생각한다'라 말을 하는 사람들 감정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지금 상황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갈망했기에, 내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은 빈틈없이 빽빽했다. '내가 일을 하지 않아도 존재 가치가 있을까' '이렇게 누워만 있는데 숨 쉬는 것만이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될까'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며, 이런 상황이 오래 있다가 잠잠해졌을 때 나는 어떤 모양으로 살아야 할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 결국 나라는 존재의 의미는 존재에 있지 않고 행위에 있었다.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만 했다. '행위하는 나'만이 존재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누워있는 나'는 내 관점에서는 '죽은 나'였다. 이런 몸 상태로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을 할 수도 없었다. 미래는커녕 30분 뒤 상태도 예상할 수 없었다. 한숨만 나왔다. 런 존재의 문제보다 급박한 건 생존의 문제였다. 벌어두었던 돈을 생활비와 병원비로  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번 갈 때마다 물리치료비로 거의 10만 원씩 들어가는데 차.도.가..다. 이제 나는 뭐 먹고살아야 하지. 진건 몸뚱이뿐이거늘 똥도 못 싸고, 밥 누워서 먹고, 와,  30살이다. 30살씩이나 되어서 산소만 탕진하고 있네. 다시 답이 없는 작은따옴표 행진 시작다, 나이와 건강이 콜라보된  미래론. 한 마음이 뇌 안에서 꼬리잡기를 했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일단 부정적 생각의 쳇바퀴를 멈춰야 했다. 이어폰을 꽂 마음속 비명을 잠재웠다. 그렇게 봄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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