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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몬스 Jun 24. 2022

횡단보도에서 뛰지 마세요

두꺼바, 두꺼바,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두꺼바, 두꺼바, 헌 걸음 줄게, 새 허리 다오. 


몸에 대한 탐사를 시작했다. 그동안 잘못된 생활 방식으로 행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바꿨다. 허리 수술로도 바뀌지 않는 습관스스로 재수술했다. 특히 몸의 자세와 움직임 공부하고 올바른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동안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을 챙기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걸음걸이였다.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걸었었다. 무지했다. 아프기 전에는 이쪽에 관심을 가져볼 생각도 못했다. 자세는 통증과 직결되었기에 올바른 자세로 앉고 서고 걷는 게 중요해졌다. 아직도 20분 이상 앉는 것은 힘들어서 걷는 자세부터 교정했다. 수영장 갈 때나 음식을 사 올 때 해야 하는 필수적인 움직임이었기에 다른 자세보다 걸음걸이를 바꾸는데 집중했다. 뒤꿈치에서 앞꿈치로 디디고, 위에서 누가 내 머리채를 위에서 당긴다는 느낌으로 걸으려고 했다.


정자세를 유지하려고 신경 쓰며 걷다 보니 속도가 달라졌다. 사람들은 토끼인데 나는 꼬부기(거북이)였다. 또 하나 달라진 것이라면 음악의 유무다. 아프기 이전에도 걷는 것을 좋아해서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걸었다. 비트에 몸을 맡기고 주위 풍경을 보며 걷는 게 좋았다. 세상이 뮤직비디오고 모든 순간은 찬란했다. 그 찬란했던 순간을 놓아주고 이어폰 끼는 습관은 버려야 했다. 음악을 들으 나도 모르게 비트에 몸을 맞추게 되어 걷는 속도가 들쑥날쑥해졌고 자세가 흐트러졌다.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 허리는 신이 나지 않았고 오히려 아파했다. 음악을 끄고 몸의 소리를 들었다. 내 몸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히 더 꼬부기처럼 느리게 걷게 되었다. 이제 세상은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GIF였다. 내 눈은 클로즈업된 렌즈가 되어 예전보다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치는 풍경에 불과했던 경찰서 앞 나무를 응시했다. 몇 년을 봤지만 지긋이 본 적 없던 나무였다. 그날따라 울타리 너머로 나무 앞 표지판이 보였다. 표지판에는 70년이 넘은 나무로 추정된다고 적혀있었다. 시선을 표지판에서 나무로 옮겨 하늘에 닿을 듯한 나무를 올려다봤다. 고개를 하늘로 들어 한참을 바라봐야 하는 큰 나무였다. 살갗에 바람이 느껴진다. 바람에 따라 춤을 추지만 결코 흔들림이 없는 나무였다.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본다. ‘나무가 나무구나’ 했던 지난날과는 달리 멋져 보였다. 지나가다가 봐도 어김없이 그 나무에 마음이 동한다. 70년 된,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지 모를 티나무에.


느린 걸음을 가진 꼬부기횡단보도도 빠르게 건널 수 없었다. 단보도는 왜 이렇게 길고 신호는 왜 이렇게 빠른 건지, 조금 느려졌을 뿐인데 세상의 규칙을 지키기 버거웠다. 빨간불이 초록불이 되는 시점이 출발 신호탄이었다. 신호가 초록색으로 변하자마자 건너야 겨우 반대편에 무사히 착지할 수 있기에 초록색 불이 깜박여도 건너지 않고 기다렸다. 6초 남겨두고 뛰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예전에는 저렇게 뛸 수 있었는데’ 잠시 과거를 회상한다. 슬픔에 젖진 않는다. 멀리서 차의 신호를 먼저 보고 횡단보도 신호를 예상해 걸음 속도를 조절하는 여유 부려본다. 시간이 남았을 때는 주위를 돌아보고 시(市)에서 손수 심어놓은 꽃들의 이름을 다음앱으로 검색한다. '의정부는 보통 ‘페튜니아’와 ‘버베나’를 많이 심는구나.' 오늘도 잡지식 하나 얻었다. 자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면 구석에 가 멈춰 선다. 가만히 서서 다시 몸의 곳곳을 교정해본다.


내일은 비가 오려나 보다. 내 몸이 기상청이 된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내 허리 상태의 앱을 만들면 날씨 예상 앱이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기상청보다 내 몸이 더  정확했다. 다리가 당기거나 저리고 허리가 왠지 모르게 더 아프고 누르는 느낌이 나는 날 다음에는 어김없이 비가 왔다. 수영장에 나오시는 할머니들과 콜라보하여 우리 동네 기상청을 차려볼까. 영장 머니의 무릎도 예보하는데 도움이 될 텐데.


비가 억수로 내리던 여름밤, 오늘은 걷는 걸 관두기로 한다. 윙......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멍하게 먼지가 굴러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삐리리릭, 에어컨을 켠다. 공기가 지나가는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에어컨이 가동되는 소리, 그리고 내 숨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공기 중 먼지를 바라보며 누워 빗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빗소리가 잠잠해지더니 매미가 가열차게 운다. 밤도 깊었는데 매미는 왜 잠도 안 자고 우는 걸까. 문득 허리디스크가 소나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쏟아지게 아프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잠잠해지니까. 그럼 저 매미는 '나'인가. 비가 오는 동안 매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울려는 준비를 할까, 아님 비가 언제 그칠지 자연 현상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느끼고 있을까. 매미도 비를 미워할까. 매미는 여름에 주로 활동하는데 장마가 오면 못 우는 자신의 환경적 한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렇게 나는 누워서 매미가 되어본다. 내가 매미라면 소나기가 그쳤을 때 맞춰서 최선을 다해 우는 매미가 될 테다. 여한이 없도록. 그럼 지금 나는 아직 번데기구나. 느리게, 가야겠다. 느으으으-리이 이 이이 이-게에에에에- 언젠가 크! 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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