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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몬스 Nov 18. 2022

겨우 얻은 일상 (1)

허리디스크 환자의 플렉스(Flex) : 극장에서 영화보는 사치

 것 같은 마음으로 을 통과했다. 건강한 삶을 훔치고 싶었다. 누군가 쉽게 하는 일을 죽어라 노력해서 얻을 수  있었다. 내 하루를 오직 한 가지 일을 위해 희생했다. 자전거를 타고, 영화를 보고, 수영장에 가는 것을, 누군가는 하루에 한꺼번에 하고도 남는 일이었겠지만, 나는 하루에 하나만 하는 것도 숨이 찼다. 세상에서 나 혼자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았다. 술래는 날 찾지 않았다. 언젠가는 찾겠지 생각하며 꼼짝 않고 있었지만 같이 놀던 친구들은 내가 있는 것을 까먹은 게 분명하다. 다들 자기 집으로 가버린 듯 보였다. 하는 수없이 혼자 놀았다. 영화를 보며, 자전거를 타며, 수영을 하며, 내가 술래가 되어 나를 찾았다. 더 이상 사람을 찾지 않게 되었다.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정갈하게 차려놓은 듯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소박하고 무해한 찰나의 풍경이었다. 날은 그렇고 그런 어느 날이 아니었다. 

 



희망이란 가장 위험한 것이지

- 1917 中


5년 만이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한때 잠시 영화감독을 꿈꿔보기도 했고, 장소 헌팅을 하는 사람 혹은 영화 포스터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도 상상했었다. 그저 영화판에 발만 담글 수만 있어도 인생이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었다. 프레임 목걸이를 가지고 다니며 길거리 곳곳을 네모 안에 담아보곤 했다. 시간과 공간의 마법이 곳곳에 펼쳐진 곳, 그곳이 영화였다. 나는 특히 전쟁영화 마니아다. 허리디스크로 3개월 동안 시체처럼 누워있을 때에도 하루의 에너지를 아꼈다가 잠들기 힘든 새벽에 전쟁영화를 한편씩 보는 좀비였다. 그렇게 본 영화가 50편이었다. 포탄이 터질 때마다 내 다리에 전기도 찌릿찌릿 왔다. 비참한 현실 속에서 누군가는 살아갔고, 자신의 일을 했고, 자신보다 다른 이를 혹은 신념을 지키는 이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허리디스크 수술 부작용으로 한참 아파 누워있었던 2017년 7월, 덩케르크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크랭크인이 되기도 전에 이 영화 정보를 찾아보며 극장에서 볼 날만 기다렸던 작품이었다. 외국 사이트에 흩뿌려진 기사를 읽으며 촬영이 잘 진행되고 있음에 흐뭇해하곤 했었다.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좋아하는 데다가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 작품이라 3년 후에 꼭 보겠다는 생각으로 그해에 알람까지 등록했던 영화였다. 그 허리디스크가 재발되어 못 볼 줄은 예상을 못했다. 좋아하는 일도 못하는 몹쓸 허리를 가진 사람이구나, 한방에 다가왔다. 이제 무슨 낙으로 살아야 되는 걸까 낙담했었다. 반복되는 고통, 슬픔, 공포 안에서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염원했다. 내게도 선택권이 주어지는 날이 오기를.  


랬던 내가, 극장에 영화를 보러 오게 되는 날이 오다니... 그날이 왔다.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까지는 아니어도, 허리의 광복절까지는 아니어도, 비슷한 그날이 왔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전쟁영화니까 IMAX G열로 예매하고, 배를 든든히 채우고, 3시간 동안 핸드폰도 안 하고 라디오도 안 듣고 오로지 허리만 신경 쓰면서 누워있었다. 최대한 허리를 아끼기 위해 장으로 이동하는 시간을 영화 시작 시간과 타이트하게 맞췄다. 상영관에 입장해서 자리에 앉았다. 빨간 의자와 큰 스크린, 살짝 어두운 회색 빛 극장, 영화를 기다리는 설렘은 여전했다. 바뀐 건 의자의 천 재질뿐. 극장에 안  동안 가죽로 바뀌어 있었다. 좌석이 예전보다 허리를 조금 더 받쳐주는 느낌이었다. 2시간 동안 앉아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괜한 느낌이 들었다. 광고가 끝나고 조명이 꺼지고 잠깐 어두운 그 찰나 두근거렸다. 곧 IMAX 대화면이 내 눈앞에 디졸브 되어 펼쳐졌다. 제작사 홍보 영상 속 펑펑 터지는 폭죽이 나를 위한 축하 같았다.


극장이 존재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아카데미 음향상과 촬영상을 받은 영화 ‘1917’은 오랜만에 극장에 찾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1917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이야기였다. 뒤로는 포탄에 쫓기고 앞은 보이지 않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을 VR 체험하는 듯했다. 왼쪽 다리는 저림이 계속되었지만 순간순간 영화관의 공기에 내 숨이 닿는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중간중간 위기 호흡 척추 곧게 하기, 복근에 힘주기, 팔로만 앉기 하며 극복했다. 엔딩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갈 때까지 극장에 앉아 있었다. 나왔다가 아쉬워서 다시 돌아갔다. 아무도 없는 극장의 커다란 스크린 앞에 다. 끝이 나고도 한참 동안 내가 영화를 봤다는 사실에, 이 시도해볼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에, 감사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와 찜질기에 허리를 포갰. 귀가 먹먹해졌다. 벅차서 눈물이 절로 흘렸다. 영화를 보고 왔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작은 일을 하고 감격스러워하는 모습에 서글펐다. 기쁨과 슬픔이 서로 뒤엉켰다. ‘제가 오늘 영화를 보는 사치를 했다고 해서 내일 너무 아프진 않게 해 주세요. 그러면 너무 절망할 것 같아요. 제발요. 그래도 오늘 감사했습니다.’ 속로 기도하며 잠이 들었다. 




(자전거와 수영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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