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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몬스 Nov 11. 2022

통증의 파도가 220,752,000번 지나간 자리

힝, 속았지! 상태가 좋아지다가 다시 꼬라박을 때

"우리 헤어져."

허리가 나에게 말한다.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이별통보다. 여느날처럼 수영장에서 운동을 하고 나왔는데 문득 안 좋은 느낌이 온다. 허리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최악은 지나갔다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언젠가 다시 더 큰 최악이 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이 그날인 것 같다.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잠을 청한다. 다음날, 역시였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발을 땅에서 1cm도 떼어낼 수가 없었다. 조금만 발을 들어도 허리를 바위로 짓누르는 것처럼 끌어당기는듯한 통증이 왔다. 리를 질질 끌며 이동해야 했다. 연히  입을 수가 없었다. 누워서 뒹굴뒹굴 팬티를 입는 모습이라니. 7년 전이 재연되는 광경에 억장이 무너졌다. 이렇게 최악인 날을 다시 맞이. 머릿속으로 그려놓았던 시나리오지만 서러움이 세차게 치밀어 오른다. 지금까지 어떻게 만든 몸인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아파질 수 있는 걸까, 내가 도대체 수영장에서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걸까, 항상 허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눈치 보면서 주의하며 행동했는데 억울했다. 재채기를 할 때, 양치질을 하면서 헛구역질을 할 때, 변기 뚜껑을 내리고 레버를 누를 때, 아주 짧은 찰나 허리를 2도 숙이는 것조차 아팠다. 급성이었다. 결국 난 꼬박 6일을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5년 전처럼 팟캐스트를 들으며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어야 했다. 허리가 다시 나에게 '자니?'라고 연락을 해줄 때까지.


죽을 것 같은데 죽지 않았다. 지나간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 고통의 파도 속 모래알처럼 7며 깨달았다. 지나간다. 조그만 물살에도 펄럭이는 모래처럼, 허리가 아플 때면 온 삶 전반이 흔들리는 사람으로 살았다. 어두운데, 더 어두워질 것 같았고, 곧 더 어두워지면, 더, 더, 어둠이 있을 거라고, 되뇌었다. 두려웠다. 희망을 품었다가 다시 실망할까 봐. 빨리 더 깊은 어둠 속에 잠식당하고 싶었다. 차라리 익숙한 어둠 속에 쪼그려 있다가 가끔 나타나는 찰나의 빛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게 나았다. 짙은 패배감이 나를 안개처럼 감쌌다. 그랬었다.


이제 허리와 헤어졌어도 밥만 잘 먹는다. 하루 눈물이 날 뿐 그저 집 나간 허리를 누워서 기다린다. 이제 시간을 들여 쉬면 다시 슬며시 돌아올 거라는 것을 안다. 예전에는 ‘왜 안 돌아오지, 왜 계속 아프지. 나는 이제 어떻게 살지.’를 시간, 분, 초단위로 고민했다. 산다는 것,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아픔이었고, 그 깊은 어둠이 나를 짓밟았다. 해결되지 않 허리 통증과 내 삶을 초단위로 고민하면서 낙담했다. 1분의 좌절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며 바닥에 바닥으로 기어들어갔다. 랬던 내가 이제 하루 단위로 허리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 여유가 생기기까지 84개월 동안 눈물로 허리를 공부했다. 아픔 속에서 내 몸의 통증, 내 몸의 각도, 내가 활동했을 때의 데미지 등을 수치화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2555일 동안 신체와 감정의 료를 모았고, 이를 기반으로 허리 통증 그래프를 그 지금의 내가 어느 정도에 위치하는지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나를 괴롭히고 있는 증이 아이러니하게도 내 삶의 나침반이었다.


필라테스, 수영, 헬스, 물리치료, 도수치료, 침치료, 전기치료, 약물치료, 주사치료, 시술, 심지어 산부인과 수술까지 허리에 영향을 미칠 만한 것들 중 안 해본 것은 없다. 활동에 따른 허리 데미지 수치를 고통의 수치로 치환하고 61,320시간 동안의 빅데이터 과정을 거쳐 몸 상태를 진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픔이 지속될 때에도 끊임없이 적었다. 망설일 시간에 메모장을 열었다. 빨래, 청소, 설거지, 운동, 샤워 등 기본적인 활동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 운동 걸음 수에 따른 통증의 강도, 통증의 유형, 어떤 움직임이 무리가 되는지, 활동에 필요한 허리의 상태 정도, 상처 입은 디스크를 잦아들게 하는 데 걸리는 시간 등 모조리 적었다. 허리에게 쓰는 반성문이었다. 활동하기 위해 앞뒤로 넉넉한 시간을 확보 쉬며 최대한 허리가 상처받지 않도록 돌봤다. 시행착오는 무수히 반복되었다. 허리의 통증 강도가 비슷한 정도(통제 변인) 때, 유튜브에서 나온 허리에 좋다는 운동을 하루에 하나씩 해보면서(조작 변인) 얼마나 아픈지 혹은 좋아지는지(종속 변인)를 실험했다. 그러다가 정말 안 좋은 운동을 만나면 며칠을 고생다.(유튜브에 나오는 허리에 좋다는 운동은 함부로 따라 하지 마시길. 그 운동은 환자가 하는 운동이 아니고 건강한 사람이 허리를 강화하기 위한 운동이 대부분입니다.) 내가 직접 실험체가 되 허리에 좋은 것과 안 좋은 것, 선과 악, YES or NO, OX로 나눴고, 당연히 X인 것은 하지 않았다. 당연한 것들을 축적하는데 3,679,200분이 걸렸다.


X인 것들을 자발적으로 하면서 '왜 나는 허리가 안 좋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더 큰 고통이 답일지도 모다. 자신을 바꿔야 할 커다란 계기를 찾지 못했으니 말이다.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결국 자기 자신을 바꾸게 된다. 자그마한 신호들을 무시하며 사는 것이 나중에 얼마나 큰 고통을 불러일으키는지 모르기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 또한 허리가 악다구니를 썼을 때야 비로소 달라졌다. 말 그대로 한 발자국도 못 떼서 외부와 단절되고, 혼자 팬티도 못 입고 똥을 싸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한 채로 아파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정도에 이르면 내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허리 앞에 내려놓게 된다. 아빠와 안 보고 살 각오로 고집부리며 얻으려 애썼던 사랑했던 직업과 안녕하고, 아픈 모습에 안타까워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내가 겪는 고통은 잊은 채 내 생활을 답답해할 가족도 멀리하며, 친구는 굳이 결혼식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정리된다. 책, 영화, 커피, 전시회 등 현대 문화생활과 멀어지며 동굴 속에 처박히게 된다. 안 그러면 죽을 것 같으니까. 더 아파보면 된다. 그래야 느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 다다른다. 허리가 아프고 나서 슬펐던 것은 일을 그만뒀다는 커다란 결정이 아니었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를 떨 수 없는 것, 크랭크인됐을 때부터 3년 동안 기다린 개봉 예정작 덩케르크를 영화관에서 못 보는 것,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못하는 것 등 작고 소중한 것들을 잃어야 했던 것에서 비롯됐다. 고작, 이 정도였다. 이전의 기쁨을 고작, 이라는 부사로 치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의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었는지, 작은 절망들을 얼마나 쌓고 허물었는지 모른다. 아픔이 높이 치닫았을 때는 기쁜 기억을 더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렸다. 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볼이 쓰라리도록 눈물을 흘리고 입이 찢기도록 하품을 하며 허리에 찜질기로 화상 문신을 새기고 있는 사이 서서히 다른 삶의 방식들이 내 삶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건 내가 아니라며 밀쳐내다가 그것 또한 나라고 받아들이는 동안 바깥은 어느새 사계절의 옷을 7번 입고 벗었다.


건강이라는 신체적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아프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고통이라는 감옥 속에서 220,752,000초 동안 살았고 두부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언제인지도 모른 채 수양 중이다. 통증의 바늘이 나를 쑤시며 너에게 진짜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 통증의 바늘에 글자라는 실을 꿰쓰면 알아가 보자 한다. 이 글 한 번에 쓰이지 않았다. 몇 분을 쓰고, 아프면 누워서 쉬다가, 다시 쓰기를 파도처럼 반복했다. 진실로 나를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언젠가 나에게 주어질 건강이라는 자유를 무엇을 위해 쓸지 상상한다. 더이상 허리가 아프지 않아서 하고 싶은 대로 자율 주행할 수 있다면 테슬라처럼 떡상할 수 있겠지. 즐거운 상상은 화성으로 간다. 죽지 않는 한, 시간은 내 편이라고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또 허리 데이터 1TB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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