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Hi), 나의 프랑켄슈타인
허리디스크 환자의 넋아웃 재활운동
책상에 놓인 1.5L 생수병을 집어 든다. 뚜껑을 열고 입을 대지 않고 마신다. 물이 무전기를 치니 장기가 대답한다. 물이 내 목구멍에서 가슴으로, 위(胃)로, 배까지 이윽고 도달했음을 느낀다. 비로소 나의 장기들의 위치를 알 것 같다. 언제나 나에게 존재하는 장기인데, 빈 속에 무엇을 넣었을 때야 비로소 인지한다. 분명 (장기가) 있는데 (인식에는) 없다. 부조화다.
매주 토요일, 재활 시간마다 또 다른 부조화를 목격한다. 이해와 이행의 부조화. 재활 선생님이 가르치는 몸의 이론과 움직임을 머리로는 이해를 하는데 몸으로 이행하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매주 지겹도록 같은걸 틀리고 틀리고 또 틀렸다. 선생님은 일갈했다. 내가 운동선수였음 한 대 맞았다고. 하라는데 왜 안 하냐고.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그러셨을까. 하지만 여전히 내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내 몸은 요지경 속이다. 왼쪽을 쓰면 오른쪽에 힘을 풀고, 오른쪽을 쓰면 왼쪽의 힘을 푸는 짝짝이 몸이다. 또한 상체에 힘을 쓰면 하체에 힘을 빼고, 하체에 힘을 쓰면 상체에 힘을 빼버리는 괴상한 프랑켄슈타인이다. 이런 몸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좋은 자세를 했을 때와 그렇지 않고 평소에 아플 때 느껴지는 다리의 느낌을 뇌에서 똑같이 통증으로 인식해서다. 근육에 올바르게 힘을 줬을 때 느껴지는 단단한 느낌과 날 7년 동안 괴롭힌 칼로 다리를 긁는 듯한 방사통이 똑같은 느낌이다. 옳은 것과 그른 것, 엄연히 다른 건데 느낌이 같으니 내 머리는 혼돈의 카오스다. 신경이 지나는 길이 다리에 있어서 느낌이 유사한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그럼에도 난 이 느낌을 7년 동안 통증으로 인식해왔기에 몸에서 오류를 발생시킨다. 좋은 자세로 힘을 잘 주고 있다가도 뇌가 그 힘이 들어가는 느낌을 통증으로 인식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힘을 풀어버린다. 통증을 느끼지 않기 위해 몸이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아픈 시간이 파놓은 깊은 흉터였다. 선생님이 계실 때는 통증이 와도 내가 제대로 하면 지적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이 느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 혼자 있을 때는 내가 몸을 잘 못써서 오는 신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꾸 통증이 오지 않는 방식으로 몸을 사용하게 됐다. 재활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방사통의 화끈한 느낌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 느낌에 드는 부정적인 감정을 깨부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7년 동안 날 괴롭혔던 방사통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니. 그건 개와 원숭이가 사랑에 빠질 확률이지 않은가. 심지어 공포다. 긍정적으로 생각했다가 진짜 통증이면 어쩌나. 운동하고 나서 더 아프진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날 지배한다.
재활은 두려움의 연속이다. 통증을 사라지기 위해 재활을 하지만, 재활을 한다고 해서 통증이 뿅 하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가중된다. 운동을 못하는 나는 몇 번이고 틀린 움직임을 하면서 맞춰나가야 겨우 올바른 자세를 한번 할 수 있다. 그 성공했던 한 번의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반복하며 정확한 감각을 익히고자 한다. 그 감각을 찾아나가는 연습 과정에서 몸에 안 좋은 움직임들이 쌓이며 통증이 온다. 그럼에도 성공했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반복한다. 나쁨:좋음을 9:1에서 6:4로 만드는 것까지가 선생님과 함께하며 만들어나갈 수 있는 정도이며 나머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기에, 선생님과 있을 때 차라리 많이 틀리고 지적받고 고쳐서 최대한 올바른 움직임을 익혀야 하기에 아파도 멈출 수 없다. 통증은 필연적이다.
재활을 다녀와서 누웠는데 왜 나는 이런 몸을 가지게 되었을까, 왜 내가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되나, 라는 생각에 울컥한다. 내 몸은 단지 아픔을 피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래서 계속 아프다. 이제라도 낫기 위해서는 통증을 정면으로 뚫고 가야 한다. 바늘이 비처럼 내리는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피, 땀, 눈물로 얼룩진 몸을 데리고 고지로 가야 한다. 그 길이 쉬운 길이 아님을 알고 있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이기에 갈 수밖에 없다. 가야 한다. 허리가 아파서 통증이 오고, 통증이 와서 몸을 이상하게 쓰고, 그래서 다시 또 아픈, 악순환의 굴레를 깨부숴야 한다. 요즘 생각한다. 어려워도 올바른 길로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쉬운 길은 나중에 보면 결코 좋은 길이 아니었음을 깨달아왔다. 힘들 때는 쉬운 길이 좋다. 힘이 들지 않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많이 쌓인 다음에 돌아봤을 때, 쉬운 길에선 얻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려워도 성장할 수 있는 길을 택한다. 울면서 가겠다. 다시는 내가 했던 잘못된 방식으로 몸을 쓰지 않겠다. 관성을 이겨내 보겠다. 무의식을 조종할 정도로 지난 잘못된 몸의 패턴을 깨보겠다. 가야 해. 가겠다. 가고 있다. 조금만 울다가 다시 일어나서 가겠다.
앉아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나를 상상한다. 중간중간 통증이 그 상상을 방해한다. 다시 좌절한다. 너는 그렇게 안될 거라고 통증이 내 뇌에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아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다시 뇌가 다리에 신호를 보낸다. 네가 틀린 거라고, 네가 아픈 것은 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런 부조화적인 몸의 메시지 속에서 눈에서는 물이 흐른다. 그 와중에 팔 힘을 안 쓰고 있다고 뇌가 말한다. 울면서도 팔에 힘을 주고, 다시 그런 생각을 했다는 내가 서러워 눈에서는 물의 세기를 강하게 올린다. 뇌가 말한다. “눈(目)아, 너까지 챙겨주면서 목적지에 닿을 수 없어. 미안. 그래도 가야 돼.” 이것은 자아분열인가, 신체 분열인가, 뭔지 모르겠는 분열이 일어나지만, 다시 뇌가 말한다. “얘들아, 너희들은 팀이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개성이 강한 말이 많은 내 신체와 나는 다시 재활의 길을 간다.
누워서 쉬면서 국가대표 축구팀 유튜브 영상을 켠다. 그제 경기였는데 끝난 당일 근육이완 운동을 하고, 바로 다음 날 슈팅 연습 훈련을 하는 내용이다. 피곤해서 쉬고 싶을 텐데, 어김없이 훈련 연습장에 나온 선수들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재활이 나에게는 큰 숙제여서 끝내면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선생님은 매일매일 하루도 힘을 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24시간 동안 쉬지 말고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속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런데 국가대표 선수들을 보니 가능했다.
前 연예인 現 타운헬서인 김종국은 ‘고통은 신이 주신 축복이다’라고 말한다. 극복한 자에게 고통은 그렇게 정의되기도 한다. 욱하기도, 슬프기도 하다. 나도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지금 현재 완벽한 희망의 모습이 아닐지라도 희망하련다. 내가 고통 없이 오래 앉아있을 그날을 기다리겠다. 횡단보도에서 달릴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겠다. 기꺼이 통증과 함께 걸어가겠다. 그때쯤 말할 수 있겠지, 안녕(Good-bye), 나의 프랑켄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