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고흐 노랑이 빛나던 하루
반고흐 전시가 서초구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다. 이번에 개최한 전시에서 화상 고흐 작업 중 볼만한 게 별로 없다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크게 있었다. 어쩌면 조금은 부담스러운 관람 요금 때문이었을 수 있지만 오르세이미술관에 가서 올랭피아의 메인작을 보려고 특별 전시 요금을 추가로 내도 1만 원 남짓, 한국에서 고흐작품을 볼 수 있다니 뭐 비용을 부담하는 건 나에게는 큰 이슈는 아니다. 다만 고흐의 그림을 함께 보게 되는 관객의 봇볼꼴이 많을까 걱정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나에겐 꽤 좋은 문화일기로 남은 하루가 되었다. 평일이어도 사람으로 붐비었지만 나름의 질서가 있었고 열을 지어서 보는 게 맞지 안다는 것을 아는 관객이 많아서 좋았고 작품을 정면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여유와 서로에 대한 여지를 주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밀레의 작업을 모작한 <씨 뿌리는 사람>과 <밀단과 떠오르는 달이 있는 풍경>은 꼭 고흐의 노랑을 처음 보던 날을 떠올리게 했다.
2007년 겨울 나는 생애 처음으로 혼자 하는 여행을 떠났다. 사실 그 누구도 나조차도 왜 일본을 택했는지 모른다. 그냥 이웃나라였으니까? 싶다가도 어쩌면 이 노랑을 만나게 해 주려고 온 우주가 도운 걸까 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인가 하다 보면 결국엔 멈춰진 몇몇 장면만이 남고 전체적인 분위기로 기억되는데, 해바라기를 처음 본 순간이 나에게는 지금도 또렷한 그 첫 번째 장면이다.
공항에서 도쿄에 있는 숙소로 가기 위해 탄 공항철도 그리고 메트로, 성수역이나 옥수역을 지날 때처럼 밖이 보이는 구간이 있었는데 당시 너무 멋진 건물이 보였다. 며칠 후 그 높은 빌딩에 무엇이 있나 궁금해서 GPS도 카카오톡도 없던 때에 인터넷과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봐서 찾아간 그곳은 도고 세이지 박물관이었다. IQ84에나 나올 것 같은 회색 구조물과 다리와 육교를 지나 힘들게 헤매며 찾아간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장엄한 건물에 놀랐고 꽤나 높은 층에 위치한다는 사실에 설렜으며 감상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음에 마음을 졸였다.
다이칸야마에 위치한 일본의 고층 빌딩은 건축물에 대한 관심을 갖기에 여전히 충분하다. 당시 도고세이지미술관은 야스다해상화재보험에서 운영하는 문화공간이었는데 지금은 솜포재팬 회사의 솜포미술관으로 이름이 바뀌어 운영되고 있다. 지금 같으면 아마 입장 자체를 시키지 않았을 것 같은데 늦어버린 나에게 충분히 감상을 하고 나와도 괜찮다며 안내해 줬다. 상냥한 응대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순진하기 짝이 없던 나는 미술관을 천천히 둘러보고 마지막 나올 무렵 있는 세 점의 작품이 있는 공간에서 눈물 나게 놀랐다. 한 작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두작가는 고흐와 르누아르였다. 고흐의 해바라기가 슬로 모드로 보였다. 이때 그림과 두 번째로 사랑에 빠진 걸까. 노랑이 빛나는 하루였다.
나도 해바라기도 서로를 바라보던 날이었다. 고려상감청자를 보고 예쁘다고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말하던 나였지만 그날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주 어두운 공간에 세 점의 작품이 있었고, 센터를 차지한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을 보며 울었다. 노란색이 무지갯빛보다 찬란하고 아름답고 알록달록하며 따뜻하고 자비롭다고 느낀 날이었다. 이전에 노랑은 때가 잘 타서 쓰다가 자꾸 포기하게 되는 색에 지나지 않았는데 숭고미를 가진 색깔이구나, 노랑을 잘 가지고 논 화가 고흐가 태양처럼 빛나보였다. 어둡고 캄캄한 작은 방에 있던 그 작품을 뒤로한 채 영업시간이 훌쩍 지나 눈물자국을 닦으며 고층빌딩을 나온 나는 당시 신주쿠 거리에 있는 상점이나 건물에서 나오는 빛보다 해바라기의 노랑이 더 화려했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로부터 10년 정도 후였을까. 당시 내가 보았던 작품이 위작논란에 휩싸인 고흐의 해바라기라고 미술계가 떠들썩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속으로만 곱씹으며 몇 년이 지났고, 반고흐 재단에서 진위여부 확인하여 진품임을 보도했을 때 아무 상관없는 나는 그 소식을 접하고 눈물이 났다. 작가가 얼마나 억울했을까 싶고, 내가 바라본 것이 맞는구나 싶고, 무엇보다 다시 볼 수 있겠다 싶어서 말이다. 몇 년 전부터 고흐가 즐겨 쓰던 노랑 중 크롬옐로라는 칼라가 빛의 노출로 인해 점점 올리브 나무 빛으로 변색되어 간다는 이슈가 있는데, 노랑이 변하지 않도록 신경 써서 암실과 같은 작은방에 소수만 들어가서 볼 수 있도록 작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전시연출을 한 게 아닐까 싶어 이렇게 한 미술관 직원도 기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날 역시 노랑이 빛나는 하루였다.
구시렁거리는 루머를 뒤로 둔 채 찾은 전시장에서 <씨 뿌리는 사람>과 <밀단과 떠오르는 달이 있는 풍경>을 보며 오랜만에 처음 고흐의 노랑을 만난 하루를 상기할 수 있어서 기뻤다. 다른 작업도 물론 의미 있고 좋았지만 해와 달의 노랑을 함께 누리는 기분이 맘을 들뜨게 했다. 씨 뿌리는 열심의 마음을 가진 농부의 등을 감싸 안아 밀어주는 햇빛, 밀밭 위 곡식이 잘 정리된 밀단위로 드리우는 달빛. 고흐도 그 따뜻함을 안고 떠나고 싶었구나 싶어서, 많이 외로웠구나 싶어서 한참을 바라보다 왔다. 노랑을 알게 해 준 솜포미술관을 올해는 한번 다시 찾아가 봐야지. 노랑의 마음으로 나를 전시실로 인도해 준 분을 만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오랜만에 노랑이 빛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