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러진 몸, 그 후
우당탕탕 바스러진 몸으로 지낸 지 십 수 날이 흘러갔다. 제대로 돌아다니기 어려운 상황은 새장에 갇혀버린 새와 병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아픈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한주의 시작은 언제나 맑았고 주말의 비구름은 나를 위로했다. 코로나 감염과 일전의 수술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 얼마나 힘겨운지 알고 있었지만 이 역시 언제나 새롭다. 절대 안정으로 인해 심신 미약을 겪은 나는 요즘 바깥세상이 판타지처럼 그려진다.
기후, 환경, 해양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미스터리 한 사건을 다룬 수사물, 판타지와 SF를 주제로 하는 영화와 시리즈물로 '보는 세계'를 꼭 메웠다. 괭생이모자반으로 인한 제주바다의 몸살, 바티칸 두 교황의 케미 속 역사와 진실, 외새와 내륙으로 나뉘어버린 사회 상까지 건강한 콘텐츠까지.
하지만 여전히 '듣고 대화하는 세계'는 턱없이 부족하다. 병원 의사 선생님의 농담 외에는 감정을 교류하는 대상이 없다. 아날로그 유형에 오프라인 모드를 지향하고 하루에 일만 오천보를 기본 삼는 나는 바깥세상을 살아가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그리워졌고 얼굴을 마주하고 싶어졌다.
조용히 이겨내려고 했는데 혼자서는 절대불가능인 세상인 게다. 적어도 내게는. 집 앞벤치에 누군가 찾아오면 마지막 잎새 아닌 새순모드로 만나러 살고 싶다. 조금 겉모양이 이상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