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 가장 인상 깊게 듣고 마음깊이 품은 명언이 하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라는 말이다. 더욱이 데카트르라는 철학자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글귀를 보고 맑은 정신을 갖기 위해 노력해왔다.
스스로 사유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 <논리야 놀자> 책과 독일 중고학교 철학수업 교과서를 번역한 것을 읽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보고 또 보다가 마침내 이해가 되는 순간 말랑한 뇌에 감탄했다. 지금도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배우의 이름이나 출연했던 다른 프로그램이 생각나지 않으면 바로 휴대폰을 들지 않고 기억을 더듬어 찾아내 희열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작년쯤 출몰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수많은 챗봇의 활약은 온 세상을 누비는 중이다. 인공지능의 르네상스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콘텐츠 역시 AI 트렌드를 반영한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는데, 보면 볼수록 감히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정말 수일 내에 현실이 될 것처럼 다가온다.
실제로 영유아 아이들은 AI가 들려주는 음악이나 재밌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을 청하고 있고, 학습활동을 시작할 무렵부터는 학습비서 AI와 함께 숙제를 해결하고 있으며, 부모들 역시 아이가 모르는 문제나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제기하면 AI의 도움을 받아 상황을 극복하고 있다. 대학원생은 논문의 전체적인 구조를 AI로 깔끔하게 작성하고, 직장인 역시 아이디어 회의를 앞두고 한두 번 정도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참고해서 회의에 참석한다. 지브리 스타일의로 사진을 캐릭터로 바꾼 이미지는 각국에서 쓰고 있는 카카오톡과 같은 채팅 어플 메인 프로필을 장식 중이며, 정말 존재하는 사람으로 보여지는 데 실체는 없는 이미지가 소개팅 어플 유저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저작권 이슈는 이곳저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AI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AI를 만든 기업을 상대로 법적 문제가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지구가 문명화 되고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까지 수많은 논쟁과 전쟁 속 억겁의 시간과 노력이 있었다. 이제야 싹을 움틔우고 저작권 이슈를 산업 전반에서 다루자고 하는 시점에 다다랐는데, AI라는 큰 난제가 찾아왔다.
저작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창작자의 인격권과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겨났다. 죽은 뒤에도 50년간 존속되며 미술계의 경우 재판매시에 작가에게 보상하는 추급권이 보장되는 나라도 있다.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한 결과물에 대하여 그 표현한 사람에게 주는 권리로 필자는 다양한 모양과 색깔을 선보이는 사람들을 위한 선물이라고 여겨왔다.
모두가 AI를 통해 학습하고 상황을 받아들인다면 이 권리는 무효화될지 모른다. 결과값을 찾으려는 방법과 방향성이 다 같다면 세상은 결국 중심을 잃고 무너질 것이다. 다양한 AI가 생겨나고 있다지만 학습데이터의 부족을 호소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소규모 그리고 신생업체는 M&A를 통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같은 시스템 속에서도 사람마다 AI를 잘 훈련시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이를 훗날 개인 간, 기업 간, 국가 간 거래할 수 있게 된다면 결국 하나의 생각만 남지 않을까.
심리학에서 사람은 보통 하루에 6만 가지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생각은 과학, 철학, 문학, 예술, 종교, 사상 등 거대한 문명을 창조하고 발전시켜왔다. 생각의 차이는 다툼과 분쟁, 전쟁을 낳았지만 여전히 생각의 다름은 너무나 존귀하다.
우리 모두 책도 보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사람도 만나고, 바다에 누워 하늘도 바라보며 ‘생각의 탄생’을 축하하기를. 죽고 난 후 하늘에서 말하고 싶다. “인간은 생각한다. 고로 존엄과 존중이 필요한 동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