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와 직무 수행 사이, 예술 노동의 삭제된 시간들
들어가며 :
내 노동의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누군가 저에게 직업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고민 없이 음악가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그 확신은 서류 한 장을 떼야 하는 행정 시스템 앞에서 매번 무력해집니다. 제 일상의 대부분은 방음 벽지로 둘러싸인 좁은 연습실에서 악기와 씨름하는 시간으로 채워지지만, 이 물리적인 시간은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화려한 실적이 쌓이기 전, 그 과정 속에 있는 청년 음악가에게 사회는 묻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노동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예술이라는 이름의 특혜인가, 노동의 본질인가
사람들은 묻습니다.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는 취업 준비생의 시간도 경력이 되지 않는데, 왜 음악가의 연습만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하느냐고 말입니다. 이 질문 앞에서 저는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혹시 내가 예술이라는 고결한 이름 뒤에 숨어 부당한 특혜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기검열을 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연습실 문을 닫고 악기를 잡는 순간 깨닫습니다. 음악가에게 연습은 무언가가 되기 위한 ‘입사 공부’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직무 그 자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제조업에서 기계를 가동하기 전 점검하는 시간이 노동에 포함되듯, 음악가에게 연습은 몸이라는 악기를 유지하고 곡을 설계하는 필수 공정입니다. 10분의 공연을 위해 열흘을 연습하는 것은 9일간 놀다가 하루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9일 동안 정교하게 부품을 설계하고 조립하여, 10일째에 완성품을 출고하는 공정과 같습니다.
기록되지 않는 8시간의 노동, 그리고 비용
직장인의 출근과 퇴근 사이에는 근태 기록이 남지만, 음악가의 출근은 연습실 불을 켜는 것으로 시작해 손가락의 감각이 무뎌질 때쯤 끝납니다. 하루 8시간 이상을 오직 음악을 위해 쏟아붓지만, 이 시간은 고용노동부의 통계에도, 사회보장 제도의 자격득실확인서에도 포착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 노동은 무상이 아닙니다. 연습실 대관료를 지불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하며, 악기 유지비를 스스로 감당해야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연습)을 하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하는 기이한 구조입니다. 이 과정에서 국가 시스템 안의 저는 음악가가 아니라 단기 근로자나 기타 소득자, 혹은 무직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마무리하며 :
보이지 않는 공정을 인정하는 사회
연습실의 고독이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지 그 과정이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보낸 이 치열한 시간들이 세상에선 아무것도 아닌 공백으로 취급받을지도 모른다는 고립감 때문입니다.
연습실의 시간이 경력증명서에 단 한 줄이라도 남으려면, 먼저 예술 노동의 특수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무대 위에서만 반짝이는 결과 중심의 사고를 넘어, 그 찰나를 지탱하기 위해 매일 반복되는 유지보수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취준생의 시간과 음악가의 연습 시간이 다르듯, 우리의 연습 또한 단순한 ‘열공’이 아닌 ‘치열한 공정’의 일부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공정이 정당하게 평가받을 때, 비로소 예술은 운 좋게 터진 한 번의 무대가 아닌 지속 가능한 직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악보의 쉼표가 소리의 단절이 아니라 음악의 연장이듯, 우리의 연습 시간 또한 삶의 공백이 아닌 가장 뜨거운 노동의 연장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연습실의 기록을 멈추지 않고, 우리가 보낸 고독한 시간들의 정당한 이름을 찾아주려 합니다. 우리의 선율이 무대 밖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오롯이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경력이 될 수 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