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패스는 있지만 예술인은 아닌 어느 생산자의 고백
들어가며 :
입구에서 거절당한 신진 예술가
국가는 연일 K-콘텐츠의 승전보를 울리며 청년 예술가를 위한 지원책을 쏟아냅니다. 그중 가장 기초적이라는 ‘예술인 활동 증명’을 신청하려 홈페이지를 열었지만, 저는 곧 창을 닫아야 했습니다. ‘최근 2년 동안 1편 이상의 음악 공연 등에 출연 또는 1곡 이상의 음반 출반’이라는 문구가 제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학부 4년 동안 무대 위에서 피아니스트로 보냈던 시간과 수많은 연주는 학생의 공부일 뿐이라며 직업적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연습실 문을 열고 세상에 제 소리를 들려주려 준비하는 신진 예술가에게, 국가는 이미 결과물을 낸 사람에게만 ‘예술가’라는 이름표를 허락하는 냉정한 심사역과 같았습니다.
졸업장이라는 ‘우회로’를 기다리는 시간
다행히 저에게는 또 다른 우회로가 보였습니다. 학부 과정을 마치면 받게 될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 자격증이 있으면 공연 실적이 없어도 전시회나 공연장을 할인받을 수 있는 ‘예술인 패스’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묘한 감정이 교차합니다. 국가는 제가 음악을 가르칠 ‘자격’은 인정해 주면서, 정작 그 가르침의 본질이자 뿌리인 ‘연주자로서의 활동’은 증명할 길을 막아두었기 때문입니다. 졸업장을 따고 자격증을 손에 쥐어야만 비로소 예술인 패스라는 최소한의 신분증이라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저를 여전히 ‘절반의 예술인’으로 머물게 합니다.
생산 비용은 외면하고, 관람 비용만 깎아주는 인심
앞으로 받게 될 예술인 패스의 혜택 목록을 훑어보며 저는 씁쓸한 실소를 터뜨렸습니다. 목록은 온통 미술관 할인, 공연장 입장료 감면 같은 ‘소비의 언어’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술인 패스 외에도 산재보험이나 창작준비금 같은 제도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혜택은 다시 ‘활동 증명’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서야만 그 형체를 드러냅니다. 결국 졸업을 앞둔 저 같은 신진 예술가에게 허락된 유일한 혜택은 박물관과 미술관의 입장료 할인뿐입니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인 저에게 정작 절실한 것은 남의 공연을 몇천 원 싸게 보는 법이 아닙니다. 연습실 대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안전망을 얻고, 낡아가는 악기 수리비를 배려받으며, 비싼 악보 한 권을 살 때 주저하지 않아도 되는 ‘생산 비용’에 대한 지원입니다. 쌀을 키우는 농부에게 비료값을 깎아주는 대신 “남이 지은 쌀밥을 싸게 사 먹으라”는 쿠폰을 내미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저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여기서 저는 예술 행정의 뼈아픈 시선을 목격했습니다. 국가는 우리를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가 아니라, 음악을 구경하러 갈 때나 배려해 주는 ‘손님’으로 여기는 듯합니다. 이것은 예술을 ‘노동’이 아닌 ‘여가’의 영역으로만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창작할 시간을 쪼개어 남의 작품을 관람할 때 쓰는 할인권이 아니라, 창작 그 자체를 지속하게 할 최소한의 안전망입니다. 우리가 음악을 포기하는 이유는 남의 공연을 볼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공연을 준비할 연습실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서이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며 :
‘할인권’보다 절실한 것은 ‘존재의 인정’이다
저는 지금 피아노 레슨을 하며 누군가에게 음악을 전달하고 있고, 곧 음악 학사가 됩니다. 하지만 증명서가 없는 저는 시스템 안에서 여전히 ‘유령’입니다. 공연 실적 1회가 없어 증명서 발급이 거절된 날, 저는 스스로에게 ‘그럼 나는 예술가가 아닌가?’ 하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틀린 것은 제 삶이 아니라, 예술을 오직 ‘완성된 상품’으로만 환산하려는 차가운 행정적 지표였습니다.
국가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주어야 할 것은 입장료 할인이 아닙니다. 실적이 없어도 나의 연습 시간이 존중받고, 무대가 없어도 나의 예술가적 정체성이 인정받는 시스템입니다. 졸업장이라는 우회로를 통하지 않더라도, 악기를 든 모든 청년이 당당하게 자신의 직업을 증명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시스템이 저를 ‘교육자’로 먼저 분류하려 할지라도, 제 심장은 여전히 ‘연주자’로서 뛰고 있고 교육자의 삶도 결국 연주자의 정체성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졸업 후에야 쥐게 될 그 패스 한 장이 제 정체성의 전부를 설명하지 못하듯, 저의 예술 또한 시스템이 규정한 선 밖에서 더 크고 깊은 선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