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라우 세오 Jan 03. 2022

미술치료 매체 연구: 수채화 이야기

©프라우세오



미술치료에서 수채화는 사랑받는 매체 중 하나입니다. 특히 독일의 인지학 예술치료에서 수채화는 중요한 치유 도구입니다. 수채화에 어떠한 매력이 있는 것일까요?


Das Produzieren mit Feder und Pinsel ist für mich der Wein, dessen Rausch das Leben so weit wärmt und hübsch macht, dass es zu tragen ist.
Hermann Hesse, Aus einem Brief an Franz Karl Ginzkey, 1920
깃털(펜)과 붓으로 창조하는 것은 나에겐 와인과도 같다. 와인에 취하면 삶이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하고 아름답게 된다.  
헤르만 헤세, 1920년 Franz Karl Ginzkey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수채화란 수채 물감을 물에 녹여 그리는 그림입니다. 물을 적게 섞으면 진한 색채의 그림을, 물을 많이 섞으면 연하고 투명한 색채의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무색투명한 물을 사용하기에 수채 안료의 색감은 새하얀 종이 위에 순수하게 담아집니다. 작업하는 데 물을 사용한다는 것은 큰 장점일 텐데요, 옷에 묻어도 쉽게 지워지고 어느 누구에게나 사용이 간편해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수채화를 직접 그려본 사람이라면 주변이 다채로운 색상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계절이나 시간의 변화에 따라 미묘하게 변하는 하늘의 색상이 새삼 새롭게 다가오겠죠. 그저 초록색이었던 도심 속 가로수의 이파리가 다양한 녹색 계열의 색상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재미도 즐겨볼 수 있겠죠. 푸르른 바다는 또 어떻고요. 얕으면 밝은 파랑이고 깊으면 시커멓게 보이던 푸르뎅뎅한 색상은 모든 빛의 색상을 머금은 푸르름으로 강렬히 눈에 담기겠죠.



©프라우세오



독일의 인지학 예술치료 중 그림 치료에서는 수채화가 가진 치유력을 내담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습식수채화 기법을 치유 도구로 사용합니다. 내담자가 미술치료실에 들어오면 천천히 준비 과정을 함께 진행하며 재료 탐색 시간을 충분히 제공합니다. 깨끗한 유리볼에 담긴 원색의 색상은 반짝반짝 빛을 내며 한편에 자리 잡아 잠시 기다림의 시간을 갖습니다. 종이가 내담자와 만남을 먼저 갖도록 양보하는 것이죠. 새하얀 종이는 투명한 수채 안료가 순수함을 드러내도록 도와줍니다. 물과 섞인 안료가 내담자의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종이 위에 펼쳐지려면 종이 표면을 물 묻은 스펀지로 충분히 적셔야 합니다. 즉, 이렇게 종이는 내담자와의 첫 접촉을 시도합니다. 천천히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모든 표면을 물로 묻혀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게 안료를 묻힐 준비를 합니다. 색이 자연스레 퍼지기 위해서 매끈한 표면은 중요합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붓은 납작붓입니다. 형태를 묘사하데 적합한 끝이 뾰족한 붓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색과 색이 만나 펼쳐지는 향연을 즐기기에 납작한 붓이 제격이죠. 색채가 가진 고유의 힘이 새하얀 도화지 위에서 우리 내면으로 퍼집니다.


순수한 색과의 만남을 가지고 나면 조금 용기를 내 다음 단계로 갑니다. 서서히 한쪽에서 빛이 비치는 상상을 하고 그림 속에 밝음과 어둠이 생겨나는 과정을 관찰해 봅니다. 위와 아래가 생기네요. 그림 속 편안한 장소를 찾아 자그마한 새싹이 자라나게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즐기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그림 그리기가 우리 감정을 톡톡 건드리는 순간을 느끼게 됩니다.


시인이자 화가이기도 했던 헤르만 헤세도 수채화를 그리며 그림 그리기의 치유력을 경험합니다.


Aus der Trübsal, die oft unerträglich wurde, fand ich einen Ausweg für mich, indem ich, was ich nie im Leben getrieben hatte, anfing zu zeichnen und zu malen. Ob das objektiv einen Wert hat, ist einerlei; für mich ist es neues Untertauchen in den Trost der Kunst, den die Dichtung mir kaum noch gab. Hingegebensein ohne Begierde, Liebe ohne Wunsch.
Hermann Hesse, Aus einem Brief an Felix Braun, 1917
종종 견딜 수 없는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은 탈출구는 내가 이제껏 인생에서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드로잉을 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객관적으로 가치가 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그림 그리기는 문학에서 받지 못한 예술이 주는 위안 속으로 새로이 빠져드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 1917년 Felix Braun에게 보낸 편지에서  


거대한 수채화 작품 속 색이 주는 인상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투명한 색면이 모여 깊이감 있는 색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자유롭게 숨을 쉬며 공중을 떠다니는 듯한 가벼움 속 단단한 결속력도 보여줍니다.


수채화 작업을 직접 해보면 기다림의 미학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직 붓을 놀리는 행위에 즐거움이 퍼져나갑니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왜 그리는지 이유도 필요 없습니다. 붓질을 멈추게 되면 종이에 물감이 서서히 스며드는 변화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 위에 살며시 붓질을 얹으면 반짝반짝 생명력이 생기죠. 붓질 사이사이 숨을 고르는 시간은 한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발자국을 잠시 거리를 두고 지켜보기엔 충분한 시간이 아닐까요?    



©프라우세오



물감과 물 양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며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도 함께 익힐 수 있었습니다. 액체 상태의 물감이 시간이 지나 종이에 고착되는 변화 속에서, 찰나를 관찰하기 위해 잠시 멈춤을 하는 자기 조절 능력과 인내심도 함께 익힐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수채화 시간이 좋습니다.


Meine kleinen Aquarelle sind eine Art Dichtungen oder Träume, sie geben von der ‚Wirklichkeit' bloß eine ferne Erinnerung und verändern sie nach persönlichen Gefühlen und Bedürfnissen (...), dass ich (...) nur ein Dilettant bin, vergesse ich nicht.
Hermann Hesse, Aus einem Brief an Helene Welti, 1919
내 작은 수채화들은 어떤 문학이나 꿈과 같다. 수채화는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진 기억을 불러오고, 개인적인 감정과 요구에 따라 변하는데 (...), 내가 아마추어라 그렇다. 나는 그것을 절대 잊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 1919년에 Helene Welti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헤르만 헤세 인용구 출처: hermann-hesse.de

번역: 프라우 세오

작가의 이전글 포르멘 드로잉 Formenzeichne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