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생각하다
디자이너로 6년, 사회인으로(학생 포함) 20년, 내가 가지고 있었던 역할들이 있었다. 디자이너 6년 이외 몇 개 더 되는 게 있지만, 여하튼 나는 디자이너로의 나와 아닌 였던 나로 나눌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 그 사람들과 만나서 하는 이야기들도 나눠져 있다. 나에겐,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에 나의 20대를 같이 공감해주는 친구 40대, 50대를 같이 갈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디자인을 시작하면서 같은 일을 하는 친구는 아쉽게도 만나지 못했었다. (여기서 말하는 친구는 나이가 같은 동갑내기이다) 선배들과 동생들 뿐이었다.
단지 선임에겐 후임으로, 후임들에게 선임으로의 뭔가를 해야 할 중립 감 같은 것들이 존재하는 관계들 뿐 나의 디자인을 함께 고민할 40대, 50대의 디자인을 이야기할 친구는 없었다. 그러다가 4년 차쯤 이였던 거 같다. 파견 나가면서 동갑내기 디자이너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이 친구는 그전에 안면만 있었던 친구가 아닌 그냥 아는 사람이었다. 파견 때 만났을 때도 우리는 친구라고 말할 정도의 관계는 아니었던 거 같다. 단지, 나랑 같은 나이에 같은 일을 하는 동성친구를 만났다는 것만으로 마냥 신기했었다. 그렇게 인사만 하다가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쫑파티에서 우리는 술 한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디자이너로 격하게 공감되는 이야기들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디자이너에 대한 고민들까지 우리는 많은 술잔을 기울었다. 그리고 왜 진작 이야기하지 않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쉬웠다. 역시나 술이 주는 마법이었나, 그 마법과 우리가 쌓았던 이야기들 때문이었는지 그렇게 우리는 친해졌고 서로 이야기에 일에 대해 공감해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 후 우리는 지금 한 달에 2번 이상은 만나서 서로 작업물을 가지고 와서 피드백도 해주고 조언도 해준다. 그리고 서로 새로운 툴이나 디자인 트렌드에 대해 공유해준다. 스케치를 처음 같이 배운 것도 이 친구와 함께였다. 스케치 수업 후 오후 10시가 넘어선 시간에도 우리는 술 한잔 없이도 디자인 이야기하다 보면 3-4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무슨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은지 매번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는 거 같은데도 우리는 항상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들어가곤 했다. 아마도 그 시간은 내가 나태해지려고 할 때, 이 정도면 됐지 라는 생각이 들 때면 그 친구와의 이야기들이 나에게 자극제가 되고, 무뎌진 마음에는 다시 콩닥거리게 하는 불씨를 만들어주고 안일해지는 나의 일에 대해서는 자존감을 갖게 만든다. 감사하다 그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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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누군가를 만났다는 것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거 같다.
" 생각의 기쁨"이라는 책에서 저자가 "인생은 결국, 어느 순간에 누구를 만나느냐다."
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 진주는 그렇게 내 인생의 어느 순간에 만나 좋은 자극제이고 힐링제가 되는 친구가 되었다. 같은 일을 하면서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나에겐 중요하고 고맙다.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또는 누군가가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