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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nst Yul Dec 04. 2017

25. 하얀 캔버스가, 무섭지만 설레다

일단 생각하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


아마도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저 말이 공감이 될 거 같다. 즉 세상에 무언가를 내놓아야 하는 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 건 사실 디자인을 하면서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다는 말이 나를 가슴을 뛰게도, 그와 동시에 고통도 동반하는 것도 함께 알게 되었다.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일단 무언가를 만들려면 포토샵을 열고 'New'를 눌러 하얀 캔버스를 여는 것이 첫 번째 하는 일이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처음엔 디자인을 하면 하얀 캔버스를 먼저 보는 것보다 선임들이 잡아놓았던 시안들이 그려져 있는 가득 찬 캔버스를 보는 거였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선임들의 디렉션에 의해 수정, 추가만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아이디어를 내서 시안을 만들어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선임들이 했던 거처럼 당연하듯이 포토샵의 New를 누르고 하얀 캔버스를 열었다. 자연스럽게 채워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 하얀 캔버스를 열고 한참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눈 앞이 깜깜해졌던 적이 있다. 그때 백지의 공포를 처음으로 느꼈다. 그 후로 하얀 캔버스를 여는 것이 무서웠다. 무서웠지만 디자인이 아니라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하얀 캔버스를 채우기만 하자라는 생각으로 했었다. 혼자서. 아마도 그래서였던 거 같다.


그 하얀 캔버스를 내가 아닌 누군가 도와줄 수도 없고 시작은 나 혼자 해야 했기 때문에 부담스럽고 무서웠던 거 같다. 아무것도 없는 캔버스에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하는 부담감들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 부담감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었고 '이 일은 내 일이 아닌가 보다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도망가고 싶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저 하얀 캔버스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한테 넘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하얀 캔버스는 내가 아닌 누군가에겐 넘어가지 않았고 하얀 캔버스는 내가 채워가면서 고통(?) 스런 일을 몇 년을 반복했다. 그 고통은 꾸준하게 훈련하듯이 찾아왔고 그 고통을 맞이 하는 나만의 방법도 찾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찾았던 방법은 웹이든, 모바일이든 그 외 디스플레이 작업이 시작되면 하얀 캔버스에 프로젝트에 맞는 그리드를 만들어서 가이드는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드를 계산하고 만들다 보면 또 다른 내 머리 속의 하얀 캔버스에 그리드에 채워질 디자인이 어렴풋이 만들어졌었다. 그러면 눈 앞에 그냥 하얀 캔버스가 아닌 그리드와 그 안에 채워질 흐릿하게 그려진 캔버스가 보인다. 이게 내가 그 진통을 겪으면서 찾게 된 방법이었다. 이런 방법들을 찾아가는 내 노력과 그 방법을 적용하는 훈련들이 쌓여갔다. 그렇게 하얀 캔버스에는 나만의 것들이 그려졌고 그에 맞는 피드백이라는 또 다른 고통도 있었지만, 성취감도 느끼고 결과물이 세상으로 나가는 짜릿함을 느꼈다.


고통과 나의 단련은 '=' 같아졌다.


'=' 같아졌다는 의미는 0이다. 고통이 이제 나에게 '0'이 되었다. 이제 그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하 나의 노력에 대한 대가였다. 그때 그 두려움에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하고 나만의 방법으로 단련했기 때문에 고통의 끝이 짜릿함을 알 수 있었던 거 같다. 지금 나는 하얀 캔버스는 아직도 가끔 두렵기도 하지만 설렘이 더 커졌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캔버스에 내가 만든 (우리 팀) 것들이 세상에 나가서 빛 볼 걸 생각하면 가슴을 뛰게 한다.




나만의 두려움에 맞서는 방법으로 훈련하다 보면 더 이상 하얀 캔버스는 막연한 두려움만이 아닌 설렘도 느끼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 나는 하얀 캔버스가 이제 좋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이니까.

이 맛으로 디자인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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