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unst Yul Sep 21. 2017

15. 포폴보다 더 좋은 걸 얻었다.

일단 생각하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커피 한 잔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던 때가 생각이 난다.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 어느 날은 내가 프럼 크리에이티브 그룹 (에이전시) 면접을 보기 위해서 삼청동을 찾았던 때이다. 카페에서 면접 시간까지 기다리면서 창 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니 느낌이 좋았다. 그러게 시작된 것이다. 에이전시 생활이.

면접 합격 이야기를 듣고 첫 출근날이었다. 브라운 계열의 코트를 입은 남자아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때 알았다. '저 친구도 첫 출근이구나.' 그렇게 첫 소중한 나의 입사 동기가 되었다. 며칠 사이로 두 명이 더 입사를 했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를 하게 된 사람은 나 포함 4명이 되었다. 앞에 썼던 글에서처럼 에이전시 일은 생각했던 거보다 재밌기도 하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기도 했었다. 야근과 철야, 주말출근을 거듭하면서 우리는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밤샘 작업을 하면서 잠에 취해 헛소리도 해가고 잠을 이기지 못해서 의자를 이어 누워서 자고, 해뜨는 것까지 거의 1년은 같이 봤던 거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선임들의 기분이 안 좋으면 우리의 대피소인 회사에서 한참 떨어진 유일하게 하나 있는 편의점으로 피신(?)을 갔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끝나면 안국역 근처에 있는 커피빈에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몇 시간을 디자인 이야기, 각자의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집에 갔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냐고 하면 그 당시엔 진짜 싫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뭇거린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 때문이다. 우리는 만나면 그때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이야기한다.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매번 하는 거처럼. 다신 그렇게 마음이 잘 맞아서 서로 도와주면서 순수하게 작업할 수 없을 거 같다. 지금은 함께 일하고 있지 않는다. 각자 생각하는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포트폴리오를 채울 수 있는 프로젝트가 늘어났다. 여러 프로젝트를 해봤던 건 디자이너로써 큰 선물이다. 그런데 나는 그 선물보다 더 큰 선물을 받았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그 시간. 그리고 그 친구들.


진석이, 정민이, 우리 재호. 닭살스럽지만 그때 너네들과 함께 해서 너무 행복하고 고마워. 포트폴리오보다 더 큰 존재들이야.

 

작가의 이전글 14. 드로잉, 갈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