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치실 문이 닫힐 때마다 아이들의 비명이 복도를 찢었다. 끌려 들어간 아이들은 한참 뒤에야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나왔다.
그곳은 서울대 어린이병원 6층 62 병동, 암병동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나는 그 병동 5인실에 입원해 있었다.
신장 조직검사를 받기 위해서였다.
밤 열두 시부터 금식을 했고, 쉽게 잠을 들지 못했다.
아침 10시쯤, 젊은 의사가 병실로 와 신장 조직검사*에 대해 설명했다.
등에서 신장에 바늘을 찔러 조직을 떼어내는 검사라고 했다. 출혈이 있을 수 있고, 드물게 쇼크가 올 수도 있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동의서를 내밀었다.
“아프진 않아요?”
나는 대답을 기다리기보다, 처치실에서 들려오던 아이들의 소리가 먼저 떠올랐다.
“부분마취를 할 테니 많이 아프진 않을 거예요.”
의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동의서를 내밀었다.
엄마는 서류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사인을 하지 않으면 검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결국 사인을 했다.
잠시 후, 그 처치실에 들어갔다. 방은 좁았고, 의사와 간호사는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환자분, 엎드려 볼까요.”
나는 침대 위에서 몸을 돌려 엎드렸다.
“마취할게요.”
간호사가 붉은 베타딘을 등에 바르고, 의사는 초음파 화면을 들여다봤다.
곧 긴 바늘이 등에 들어왔다. 안쪽으로 밀려드는 느낌이 불쾌했다. 잠시 후, 바늘은 다시 빠져나왔다.
“한 번만 더 찌를게요.”
이번에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초음파 화면을 바라보던 의사의 손이 잠시 멈췄다.
다시 바늘이 깊게 들어왔다. 푹 하고 찌르는 통증에 신음이 새어 나왔다.
“괜찮아요. 금방 끝나요.”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했다.
‘아프다고….’
나는 속에서 올라오는 말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의사는 세 번째 시도에서야 조직을 떼어냈다. 바늘을 빼고, 작은 조직을 검사용기에 담았다. 내 콩팥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었다.
나는 처치실에서 병실로 옮겨졌다.
“아프진 않았어?”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얼굴을 들여다봤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병실에 도착하자 다시 엎드려 누웠다. 간호사는 등에 2kg의 모래주머니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여섯 시간 동안 절대 떼면 안 돼요. 움직이면 출혈이 있을 수 있어요.”
그 시간 동안 나는 누워서만 지냈다. 오줌은 소변통에, 밥은 엎드린 채로 먹었다. 일어나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주삿바늘을 견디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모래주머니 아래서 여섯 시간을 버티는 일은 전혀 다른 고통이었다.
어린 내 몸 위로 눌러앉은 무게는 숨까지 막아 왔다. 시간이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는 것 같았다.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모래주머니가 내려갔다. 눌려 있던 몸이 풀리며 숨이 편해졌다. 등에 남은 통증이 뻐근하게 퍼졌다. 조직검사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되었다.
며칠 뒤, 의사는 원인을 알 수 없고, 만성신부전이라는 진단으로 정리했다. 이유를 찾기 위해 버틴 검사였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 조직검사(Renal Biopsy): 신장 조직의 일부를 채취하여 신장 질환의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현미경으로 검사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