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 당장 투석을 해야 합니다

by 나달

“빈혈도 심하고 신장도 기능을 거의 못 합니다. 아주 위험한 상태예요. 바로 입원하고 혈액투석을 준비해야 합니다.”


검사 결과를 본 의사는 겁을 주듯 말했다.

1990년 중학생이 얼마 되지 않는 어느 날 의사가 내게 한 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이 부어 있었고, 먹는 것도 없는데 몸무게가 늘었다. 살이 찐 것이 아니라, 온몸이 붓고 있었다. 구토를 하고 코피를 흘리는 날이 잦아졌다. 얼굴은 창백해졌고,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마다 엎드려 잠을 잤다. 밖에 나가는 일도, 친구를 만나는 일도 점점 버거워졌다.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시들어 갔다. 잠들기 전마다 기도했지만, 아침은 늘 같았다.


상태가 더 나빠지자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광주로 향했다.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주저앉자, 어머니는 나를 업었다. 중학생이 어머니 등에 업히는 것이 부끄럽고 미안해 내려오겠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하나도 무겁지 않다며 괜찮다고 했다. 어머니 등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나는 “나중에 크면 엄마 서울까지 업어줄게”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웃으며 아프지만 말라고 했다.


신장을 잘 본다는 개인병원을 거쳐 남광병원으로 갔다. 검사를 마친 의사는 투석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말했다. 투석에는 혈액투석과 복막투석이 있었고, 의사는 혈액투석을 권했다. 어머니는 투석만은 피하고 싶어 했지만, 그 말 앞에서 다른 선택은 없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그때의 어머니 눈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당시 내 상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빈혈 수치는 정상의 절반 수치인 6점대였다. 크레아티닌(Cr) 수치는 10mg/dl을 넘었다. 쇄골에 카테터를 넣고 응급 투석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의사는 먼저 동정맥루 수술을 하고 혈관이 자라면 투석을 시작하자고 했다. 입원 직후, 심한 빈혈로 250mL짜리 수혈을 두 팩 받았다. 수혈을 받고 나자 몸에 힘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숨이 덜 찼고, 병원 밥이 맛있게 느껴졌다. 마치 다 나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입원 며칠 뒤, 동정맥루 수술을 받았다. 생애 첫 수술이었다. 밝은 수술실에 누워 있는데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얼굴에 천이 덮이자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팔목에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만 또렷했다. 칼과 피, 전기의 감각은 머릿속에서 이어 붙여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천이 걷히고, 수술이 잘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열네 살의 나는 그렇게 첫 수술을 넘겼다.


병실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마취가 풀리며 팔이 아파왔다. 다음 날, 의사는 청진기로 수술한 팔을 짚어보았다. 귀를 대지 않아도 혈류가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손을 얹자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나는 말랑한 고무공을 쥐고 혈관을 키우는 운동을 시작했다.


수술 후 2주가 지나자 혈관이 눈에 띄게 올라왔다. 3주째 되던 날, 의사는 투석을 시직 하자고 했다. 첫날은 2시간, 다음 날 3시간, 그다음 날 4시간. 이후에는 일주일에 세 번, 월·수·금 4시간씩이었다.

투석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처음 보는 주삿바늘은 상상 이상으로 두꺼웠다. 살을 찌를 때 ‘따끔’이 아니라 ‘푹’ 하고 박히는 느낌이었다. 울고 싶었지만 참았다. 주삿바늘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간호사는 잘 참는다며 말했고, 나는 그 말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투석은 내가 선택한 삶은 아니었지만,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조건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투석 인생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