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를 닮은 일본어, 돌려 말하는 그들의 진짜 속마음

직설적인 한마디가 불러온 서늘한 침묵에 대하여

by 쿠로사와 세키나리


꽈배기를 닮은 일본어에 대하여


10월의 바람이 제법 쌀쌀해진 토요일 오전입니다. 창가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갓 일본에 왔을 때의 어느 날이 문득 떠오릅니다. 의욕만 앞서던 신입사원 시절, 제 딴에는 선의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서늘한 침묵을 불러왔던 바로 그날의 기억입니다.


그날, 저는 회의 자료를 검토하던 중 한 선배의 보고서에서 명백한 데이터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한국에서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선배님, 여기 숫자가 틀렸어요. 빨리 수정해야 할 것 같아요." 명료하고, 효율적이며, 문제 해결 중심적인 접근이죠. 저 역시 그 익숙함을 따라 망설임 없이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저기, 이 부분 수치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제 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데이터는 잘못되어 있었고,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의실의 공기는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저를 향한 시선들 속에는 고마움 대신 당혹감이 서려 있었죠. 선배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아, 그런가요. 나중에 한번 보겠습니다"라고 짧게 답했고, 그 후로 한동안 저를 어색하게 대했습니다. 저는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맞는 말을 했을 뿐인데, 왜 이런 반응이 돌아오는 걸까. 그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직선과 곡선, 그 첫 번째 충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저는 그날 제가 던진 말이 얼마나 '일본 스럽지 않은' 방식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말은 사실을 담은 '직선'이었지만, 그들이 소통하는 방식은 부드러운 '곡선'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원본 드래프트의 투박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한마디, "안 돌린 건 일본어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엔 이 말을 듣고 웃었지만, 일본 생활이 길어질수록 이것이 농담이 아닌, 일본 사회와 언어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어는 단순히 단어와 문법의 조합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와(和)', 즉 조화를 중시하는 문화적 정서가 깊숙이 배어 있습니다. 대화의 목적이 언제나 '정확한 사실 전달'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 대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틀렸다'는 말 대신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라고 말하고, '싫다'는 말 대신 '그건 좀 어렵겠다'라고 표현합니다. 직접적인 거절이나 지적은 상대방의 체면을 깎고, 관계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정답 대신 '분위기'를 읽는 사람들


한국에서는 '눈치'라는 말이 있지만, 일본에는 '공기를 읽는다(空気を読む)'는 말이 있습니다. 단순히 상대의 기분을 살피는 것을 넘어, 그 공간을 지배하는 무형의 분위기와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 '공기'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제가 회의실에서 던졌던 직선의 말은, 모두가 암묵적으로 지키고 있던 부드러운 공기를 칼날처럼 베어버린 셈이었습니다. 선배의 실수를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은, 그 의도가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는 선배의 체면을 깎고 그를 민망하게 만든 행동이었습니다.


만약 지금의 저라면 어떻게 말했을까요? 아마 회의가 끝난 후 조용히 선배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선배님, 아까 그 자료 말인데요. 제가 혹시 잘못 봤을 수도 있는데, 이 부분의 수치가 제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른 것 같아서요. 혹시 시간 되실 때 한번 같이 봐주실 수 있을까요?"


같은 내용이지만, 표현 방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당신이 틀렸다'가 아니라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적'이 아닌 '확인'과 '부탁'의 형태로 접근하는 것이죠. 상대방이 스스로 문제를 인지하고 체면을 지키며 수정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그들이 추구하는 배려의 소통법입니다.


꽈배기를 꼬는 연습


그래서 저는 일본어를 '꽈배기'에 비유하곤 합니다. 생각을 곧장 꺼내놓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두 번, 여러 번 부드럽게 꼬아서 상대방이 가장 편안하게 받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전달하는 과정. 그것이 바로 일본어로 말하는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이 꽈배기 화법이 무척 답답하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속마음(本音, 혼네)과 겉으로 드러나는 말(建前, 다테마에)이 다른 문화에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되는 걸까? 왜 이렇게 복잡하게 에너지를 써야 할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이 '돌려 말하기'가 단순히 비겁하거나 솔직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조화를 위한 그들 나름의 지혜이자 배려라는 사실을요. 모서리가 날카로운 돌멩이를 그대로 던지는 대신, 부드러운 천으로 여러 번 감싸서 조심스럽게 건네는 것과 같습니다. 돌멩이라는 본질은 같지만, 받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꽈배기를 꼬는 연습은 단순히 언어 실력을 늘리는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타인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고, 내 말이 상대에게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한 번 더 고민하는 훈련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조금 더 신중하고,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돌려 말하는 것이 정답은 아닐 겁니다. 때로는 명확하고 단호한 소통이 필요할 때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일본이라는 사회에서는, 직선의 효율성보다 곡선의 배려가 더 깊은 울림을 줄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사이타마의 하늘이 더없이 맑고 푸릅니다. 이국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단어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도 저는 꽈배기를 닮은 이 아름답고도 어려운 언어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혹시 당신의 언어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나요? 직선인가요, 아니면 곡선인가요? 그 모양 속에 담긴 당신의 마음을 잠시 들여다보는 하루가 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