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몰랐던 한국 시장의 모습
*배경사진 출처: Venturesquare.net
누군가 나에게 인도 유학에서 얻은 가장 큰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 나는 답한다
"한국을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외국인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게 된 것이요"
인도에서 살면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와 경험을 한국에서 비교해 보면서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사고를 가진 것이 참 값지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나는 내가 더 살고 싶은 삶의 방향에 대한 힌트들을 얻었고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요즘에는 외국에서 한국 마켓 세일즈를 담당하게 되면서 한국 시장을 한국인과 외국인으로 바라보는 시야를 얻고 있다. 내 삶의 절반 이상을 보낸 곳이지만 새삼스럽게 새롭게 깨닫는 점들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오늘은 혹시나 필자와 같이 외국에서 한국 마켓을 담당하기 시작한 한국 IT/테크 세일즈들이나 기적적으로 이 글을 발견한 한국 마켓을 담당하는 외국 IT/테크 세일즈들을 위해 깨달은 점들을 적어본다.
대학을 제외하더라도 초등-중등-고등교육에서 10년 이상 영어 교육을 받고 자라지만 업무 언어는 무조건 한국어다.
해외에서 살다 오신 분들도 일할 때는 한국어다. 본인이 영어가 더 편하다고 해도 상사나 동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니까.
이런 현실에서 영어로 콜드콜, 콜드메일은 성공 확률이 정말 낮다.
업무 대부분을 한국어로 하는데 갑자기 영어로 누군가 말을 걸어오고 미팅을 잡고 자기네 제품을 소개한다?
일단 첫 번째, 스팸으로 오해받기 딱 좋다.
전화로 사기 치는 사례가 워낙 많아서 영어로 포문을 열면 지레 의심부터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전화번호도 해외에서 걸려오니 더욱 의심스럽게 보인다.
(본인도 통화 연결음에서 컷 당하는 것이 일상이다.)
두 번째, 한국어는 존댓말이 있는 언어다.
영어처럼 Hey로 시작할 수 없고 처음 얘기하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존댓말을 사용하고 공손해야 한다.
공손하다는 뜻은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는 뜻이고,
그렇게 조심스럽다보면 동등한 위치에서의 편안한 대화가 아닌 '을'이 되어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흐름이면 아무리 좋은 제안이더라도 '갑'의 귀에는 잘 들리지 않는다.
세 번째, 소통하는데 뇌세포를 몇 배로 써야 한다.
상사나 동료에게 전달할 때도 그냥 자료만 던질 것이 아니라 소화하고 정리해서 전달해줘야 하는 등 귀찮은 부분들이 많다.
한국은 분단국가 + 3면이 바다라 지리적으로 섬이나 다름없고, 역사적으로도 외부 침략을 결국엔 막아내서 순수 한국인들만 살고 있는 나라다.
그래서인지 '로컬라이제이션'을 많이 중요하게 여긴다. 외국 솔루션이라도 꼭 한국 시장에 맞춘 로컬라이징이 되는지를 꼭 확인한다. 아무리 다른 나라들에서는 글로벌 스탠다드 그대로 사용해도 말이다.
이렇게 문화가 정말 뚜렷하고 시장도 다른 글로벌 시장과는 다른 점들이 많다.
근데 테크놀로지는 세계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레벨이라 감히 기술로 압도할 수도 없는 시장이다.
정말 특이한 시장이다.
위에서 이어지는 맥락이다.
아무리 전 세계 시장에서 하나의 프로덕트를 제공한다고 해도 당연히 한국어 패치가 되어야 있어야 하고, 커스터마이제이션이 가능한지가 아주 중요하다. 당연히 국가마다 다른 상황이니 그런 것도 있지만, 한 가지 요소가 더 있다.
'한국의 서비스의 퀄리티는 세계적으로 봤을 때 톱 레벨'이라는 것이다.
그 뜻은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는 정말 편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야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야근은 사람이 한다. 이렇게 인력을 갈아서 높은 퀄리티를 제공하는 것이 익숙한 환경에서 구매자는 높은 퀄리티를 위해 소프트웨어 프로덕트의 커스터마이징도 중요시 여긴다. 하다못해 프로덕트가 기술적으로 커스터마이징이 되지 않으면 원하는 퀄리티와의 갭을 인력으로라도 채워주기를 바란다.
'손님은 왕'이니까 이런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나라 시장에서는 꼭 그렇지만 않다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예: 다른 나라의 어떤 고객은 우리가 제공한 글로벌 스탠다드 프로덕트를 검토해 보고, "기능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다 같이 이렇게 쓰는 이유는 분명한 강점이 있기 때문이겠죠" 라며 그냥 사용한 경우)
아무리 혁신적인 해외 신기술이더라도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국내에서의 성공 사례를 꼭 보고 싶어 하며, 관련 사진이나 정보 등은 비교적 보수적이고 결정권을 가진 '높으신 분'을 설득하는데 유용하다.
우리 회사는 미국에서 시작해서 성공한 회사다.
알만한 기업들은 대부분 계약을 맺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Direct Sales 직책을 가진 세일즈 매니저가 세일을 담당한다.
그 세일즈 모델을 그대로 한국으로 가지고 와서 시도를 했는데 처참했다.
*이건 근데 산업마다 다를 수 있으니 참고만 하시길
아무도 처음 들어본 회사와 계약은 커녕 미팅조차 흥미를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Direct Sales(직접 판매) 보다는 시장 내 인지도를 높이는 게 먼저라고 생각을 했고,
산업 관련 협회나 기구들의 담당자들에게 안부를 묻고 정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를 공유해 드리면서 나와 우리 회사를 알렸다.
추후 담당자들과 산업 관련 컨퍼런스나 전시회에서 실제로 뵈면서 더욱 친분을 쌓을 수 있었고, 결국 한국에서 첫 계약까지 이뤄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몰랐던 한국의 모습을 더 발견하게 될텐데 어떤 점을 또 발견하게 될지 기대된다.
이런 부분들이 일의 재미를 더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