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듣고 싶은 음악 들으세요

by K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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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나는 음악을 예민하게 들을수록 오히려 객관성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음악적 지식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선을 넘는 순간부터는 마치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내 머릿속에 지식이 늘어난 만큼 그 음악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감상의 공간은 좁아진다.


객관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 붙잡았던 지식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가장 주관적인 편견의 늪으로 밀어 넣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음악을 많이 듣던 시절의 내가 지금보다 훨씬 날카롭고 객관적인 감상평을 내놓았던 것 같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 지식이 내 취향이 되었고, 내 귀는 ‘좋은 음악’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나 ‘시장 논리에 맞는 것’에만 반응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운드면 일단 장바구니에 넣고 보는 비효율적인 짓을 반복해왔다.


물론 그 과정이 모두 무의미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K-POP 기획을 고민하고 대중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입장에서, 어느 순간 내 귀는 대중의 감각과는 너무 멀어져 있었다. 피치포크를 보고 차트를 분석하며 메커니즘을 찾으려 발악했던 노력들은, 최선을 다하기 위한 열정인 동시에 시장을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함이었다. 대략적인 징조만 읽어도 충분한데, 나는 음악 산업의 법칙을 완벽히 얻을 수 있을 거라 착각했고 그럴수록 음악을 듣는 일은 고역이 되었다.


그래서 최근 몇 달간은 분석과 산업 논리의 관념을 내려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만 듣고, 내 직감이 이끄는 대로 판단하는 훈련을 시작했다.


이미 머릿속에 너무 많은 지식이 차 있어서,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돌아가는 ‘유연함’의 훈련이 필요했다. 분석과 시장 논리에 기반해 “이 사운드는 뜰 거야”라고 확신하며 담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 집착이 투영된 허상이었음을 인정하고 나니, 비로소 음악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음악 업계에 있든, 음악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이든 한 가지만 얘기하고 싶다.


그냥 본인이 진짜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으면 한다.


집착을 내려놓으니 아이러니하게도 디깅은 훨씬 유연해졌고, 예전보다 더 많은 음악이 이해가 되어간다.

다시 음악을 듣는 게 재밌어진 요즘, 나는 이제야 겨우 다시 처음처럼 음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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