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의 정체성? DNA?

점점 흐릿해져가는 K-POP과 메인스트림 팝의 경계선

by K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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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캣츠아이(KATSEYE)나 걸셋(GIRLSET) 등 현지화 그룹의 등장을 이해하려면, 특정 장르가 거대 자본을 만나 주류 산업으로 편입될 때의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중후반, 알앤비와 힙합이 거대 기획을 만나 메인스트림의 '버블검 팝(Bubblegum Pop)'으로 소비되던 시기가 있었다.


퍼프대디의 기획 아래 탄생한 대니티 케인(Danity Kane)이나 체리쉬(Cherish) 같은 그룹들이 대표적이다. 지금 K-POP에서 'K'가 빠진 현지화 그룹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상 역시, 정체성의 훼손이라기보다는 K-POP 시스템 자체가 글로벌 주류 시장에 완벽히 안착하며 겪는 거대한 상업화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 미국의 기획형 그룹들과 현재의 K-POP은 무엇이 다를까? 미국 걸그룹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철저하게 '디바'스러운 개개인의 스타성에 의존하다가 극심한 '쏠림 현상'으로 파국을 맞이한 사례가 흔하다. 대표적인 예가 푸시캣 돌스다. 리드 싱어인 니콜 셰르징거에게 곡 파트와 스포트라이트가 기형적으로 집중되면서, 나머지 멤버들은 사실상 백업 댄서로 전락했고 이는 걷잡을 수 없는 내부 불화와 팀 해체로 이어졌다.


피프스 하모니 역시 마찬가지다. 카밀라 카베요라는 특정 멤버의 인기가 치솟고 솔로 활동에 무게가 실리자 팀의 밸런스는 급격히 무너졌고, 결국 핵심 멤버 탈퇴와 그룹의 무기한 활동 중단이라는 뻔한 결말을 맞이했다. 영미권에서 '그룹'이란, 결국 가장 돋보이는 한 명의 팝스타를 배출하기 위한 발판이거나 한시적인 프로젝트에 가까웠던 셈이다.


반면 K-POP은 철저하게 '팀의 합'을 최우선으로 두며, 그 디테일의 깊이가 미국 팝과는 궤를 달리한다. K-POP은 처음부터 메인 보컬, 댄서, 비주얼 등 역할을 쪼개어 특정 인물에게 쏠릴 수 있는 무게 중심을 치밀하게 분산시킨다. 문제는 이 정교하고 완벽한 유기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으로 멤버 개개인의 뼈를 깎는 '희생'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자신이 더 돋보이고 싶은 에고(Ego)를 누르고, 3분의 곡 안에서 단 10초의 파트를 위해 완벽한 대형을 유지하며 스포트라이트 밖으로 기꺼이 물러나는 헌신. 철저한 개인주의와 자아실현을 중시하는 영미권 문화에서는 끝까지 감내하기 매우 어려운 방식이다.


따라서 아무리 서구권 자본이 K-POP의 외형적 시스템을 카피한다고 해도, K-POP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멤버들로만 채워진다면 그 특유의 쫀쫀한 합은 덜할 수밖에 없다. K-POP만의 진짜 맛과 몰입감은 단순히 매뉴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팀을 위한 희생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한국인 멤버들이 주축이 되거나, 최소한 이 가혹한 시스템의 공동체적 정서를 본능적으로 체화하고 있는 멤버들이 모였을 때 비로소 발현된다.


미국 팝 시장이 10년 안에 K-POP의 겉모습을 완벽히 복제할 수는 있겠지만, K-POP이 이토록 롱런하며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이 시스템의 숱한 시행착오를 온전히 경험하며 '팀 합'의 중요성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한국인 멤버들 자체가 K-POP의 DNA이자 정체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서구권 자본이 이 깊은 DNA와 공동체적 정신까지 완벽히 답습해 내지 않는 이상, 오랜 기간 동안 K-POP의 고유한 정체성은 결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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