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거짓말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by 숲속의조르바


네덜란드는 국토가 해수면보다 낮은 나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아산만, 새만금처럼 방조제를 쌓고 간척을 하여 국토를 늘린 탓에 1/3~1/4정도가 방조제보다 낮다고 한다. 네덜란드 북쪽으로 가면 새만금방조제가 생기기 전까지 가장 긴 방조제 기네스 기록을 가지고 있던 방조제가 있다.

하를링언이라는 작은 마을의 방조제 중간 즈음에 엄지 손가락 하나로 터진 둑을 막으려는 소년의 동상을 만났다.


8-90년대에 초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네덜란드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얼핏이라도 들었을 것이다. 찾아보니 한스 브링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이란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 네덜란드를 구한 영웅적 소년이라…


문득 우리에게도 번득 스치는 영웅적 소년이 있다. 굳이 북한군 앞에서 맨손으로 공산당이 싫다고 외쳐서 죽임을 당했다는 이승복이다. 모든 학교마다 동상이 세워지고 웅변대회의 단골 주제가 되기도 했고, 기념관도 지어진 대한민국 역사상 불세출의 소년영웅이다.


이 소년의 죽음으로 많은 소년소녀가 분개하며 공산당을 미워하게 됐고, 어디 있는지도 모를 댐을 만들기 위해 코 묻은 동전을 기꺼이 헌납하기도 했으며, 기꺼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스 브링커가 될 의지를 가진 애국 소년소녀가 되었다.




동상을 봤을 당시 저 거대한 댐이 한지로 만든 창호지도 아니고, 손가락 하나로, 손목으로, 자기 몸뚱이로 막아질 것인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보다 더 새빨간 거짓말일 수 밖에 없지 않나싶다.


다른 듯 닮은 두 이야기의 진실 여부를 떠나, 군부독재정권에겐 국민을 단합하고 사상을 고취하는 데는 꽤나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재미있는 것은 네덜란드인들은 한스 브링커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이유는 미국 작가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스 브링커 혹은 은빛 스케이트》(Hans Brinker, or The Silver Skates) -1865년 미국 작가 메리 맵스 닷지(Mary Mapes Dodge)


*네덜란드의 간척 사업은 1920~30년대에 주로 이루어졌다함



문득 이제껏 살면서 내가 무수히 뱉은 거짓말 중에서 가장 빨간 맛, 새빨간 거짓말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을 하도 많이해서인지 딱히 뭘 하나 고르기도 힘들다.

자잘자잘 순간을 모면하기위한 거짓말들을 해오긴 했지만 누군가를 작정하고 속이고 이득을 취하기위해 새빨간 거짓말을 한 적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결론은 이렇다.

그 아무리 새빨간 거짓말도 이 말보다 강한 거짓말 일 수는 없고, 감쪽같이 모두 가려진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정치인들에게 감탄한다.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전혀, 도무지, 아무것도”